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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부재(不在)의 형태로 만든 애도

  도리스 살세도: 부재(不在)의 형태로 만든 애도 전시장 바닥에 가늘고 긴 균열이 새겨져 있다. 길이는 167미터, 입구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깊고 넓어지다가, 끝에 이르면 어른의 팔이 들어갈 만큼 벌어진다. 2007년 가을, 테이트 모던 터빈 홀을 찾은 사람들은 그 균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았고, 누군가는 그 위에 발을 디디기를 망설였다.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의 《시볼레스(Shibboleth)》, 미술관이라는 이상화된 공간 한가운데에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역사를 새긴 작업이다. 전시 종료 후 균열은 봉합되었지만, 그 봉합선은 지금도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의도했다. 폭력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도리스 살세도(1958년 콜롬비아 보고타 출생)는 보고타의 호르헤 타데오 로사노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뉴욕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다시 보고타로 돌아와 그곳을 떠나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 왔다. 그녀의 작업은 콜롬비아 내전, 마약 카르텔의 폭력, 강제 실종, 정치 학살, 지중해를 건너다 죽은 이주민 같은 무겁고 구체적인 사건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는 시신도, 유혈도, 직접적인 재현도 없다. 대신 가구가 있고, 옷이 있고, 신발이 있다.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사물이 콘크리트로 굳어 있거나, 천천히 풀에 잠식되고 있거나, 벽 안에 봉인되어 있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폭력이 떠난 자리에 남은 사물들이다. 신발 한 켤레의 무게 — 《아트라빌리아리오스(Atrabiliarios)》 1980년대 후반, 살세도는 콜롬비아 각지에서 실종된 여성들의 가족을 찾아다녔다.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단 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신었던 신발이었다. 살세도는 그 신발들을 받아 미술관 벽에 작은 벽감(壁龕)을 파고 그 안에 한 켤레씩 넣은 뒤, 동물의 방광막으로 입구를 덮어 외과적으로 봉합했다. 관객은 ...

카밀 앙로(Camille Henrot): 데스크탑 위에서 세계를 다시 쓰다

  카밀 앙로: 데스크탑 위에서 세계를 다시 쓰다 검은 화면 위로 창이 하나씩 열린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수장고의 조개 표본,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누군가 손톱을 다듬는 영상, 우주의 성운 사진, 실험실에서 꺼내 놓은 뱀의 해부도.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장면이 팝업처럼 겹쳐지고, 그 위로 랩 비트에 실린 나지막한 음성이 세계 각지의 창조 신화를 낭송한다. "태초에 땅도 물도 없었다. 눈네차하라는 하나의 언덕이 있었다. 태초에는 양자 요동이 있었다." 카밀 앙로(Camille Henrot)의 13분짜리 영상 《그로스 파티그(Grosse Fatigue)》(2013)는 정확히 이 방식으로 우주의 시작을 다시 쓴다. 과학과 신화, 데이터베이스와 구전, 컴퓨터 데스크탑과 원시 우주가 한 화면 위에 겹쳐 있다. 카밀 앙로(1978년 파리 출생)는 비디오, 조각, 드로잉, 회화, 설치를 넘나드는 프랑스 작가다.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ENSAD)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졸업 후 한동안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미술과 영화, 광고가 교차하는 현장을 경험했다. 2013년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로스 파티그》로 유망 작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받으며 단숨에 국제 무대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이어 남준 백 상(2014), 에드바르트 뭉크 상(2015)을 잇달아 수상했다. 2017년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예술문화훈장 오피시에를 수여했다. 현재 파리, 뉴욕,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한다. 브라우저 창으로 쓴 창세기 — 《그로스 파티그》 《그로스 파티그》는 2013년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제작되었다. 당시 앙로에게 주어진 것은 수장고와 전 세계 종(種)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권이었다. 그는 박물관의 창고, 표본실, 도서관을 돌며 대상을 촬영하고,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뒤섞어 하나의 우주 창조 서사를 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컴퓨터 데스크탑...

이안 쳉: 스스로 플레이되는 비디오 게임

  이안 쳉: 스스로 플레이되는 비디오 게임 화면 속 캐릭터는 누군가의 조작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배를 곯고, 스스로 길을 잃고, 스스로 겁을 먹거나 친구를 사귄다. 전시장은 종일 이 캐릭터의 일상을 반복 없이 지켜볼 뿐이다. 이안 쳉(Ian Cheng)의 시뮬레이션 작업은 시작도 끝도 없는 채로 실시간으로 자라난다. 그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이것은 "스스로를 플레이하는 비디오 게임"이다. 관객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 게임이 관객에게 스스로를 보여 준다. 이안 쳉(1984년 로스앤젤레스 출생)은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작가다. UC 버클리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MFA를 마친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작업은 처음부터 미술의 영역에만 놓여 있지 않았다. 유니티(Unity) 게임 엔진, 행동경제학, 발달심리학, 칼 융의 심리 유형론, 즉흥 연극의 원리가 모두 그의 재료다. 2017년 MoMA PS1에서 첫 미국 미술관 개인전 《에미서리(Emissaries)》를, 2018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첫 영국 개인전을 열었으며, 2022년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이안 쳉: 월드 빌딩》에서 아시아 최초 개인전을 선보였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 《에미서리》 삼부작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된 《에미서리》 삼부작은 쳉의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작업이다. 각 편은 컴퓨터가 생성한 가상의 생태계 안에서 서사를 수행해야 하는 한 명의 '사절(emissary)'과, 그 생태계를 이루는 동식물·지형·기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이 시뮬레이션에 정해진 결말이 없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발현(emergence)의 원리가 뒤얽혀 매 순간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쳉은 이 작업을 "이야기를 위한 서식지"라 부른다. 삼부작은 이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했고,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현대 회화에 준하는 매체로 올려놓은 사례로 기록된다...

토리 손턴(Torey Thornton), 표면 위의 수수께끼

  토리 손턴, 표면 위의 수수께끼 거대한 합판 위에 장난스러운 선 하나가 휘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네일 폴리시로 점이 찍혔고, 위로 스프레이 페인트가 흩뿌려졌으며, 다시 그 위에 아이의 낙서 같은 형체가 올라앉았다. 얼핏 미완의 실수처럼 보이지만, 제목을 읽는 순간 이미지가 다시 돌아온다. 「첫 번째, 엘비스가 나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상상한 후에」. 토리 손턴(Torey Thornton, 현재는 SoiL Thornton으로 활동)의 회화는 늘 이런 식이다. 이미지는 느슨하고 제목은 수다스럽고, 관객은 그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바로 그 길을 잃는 순간이, 이 작가가 설계한 작업의 시작점이다. 손턴(1990년 미국 출생)은 회화를 중심축으로 조각, 설치, 사진, 영상을 넘나드는 현대미술가다. 2012년 뉴욕 쿠퍼 유니언(The Cooper Union)에서 BFA를 마치자마자 이듬해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대 중반에 버팔로 AKG 미술관에서 첫 미술관 개인전 《서 베일(Sir Veil)》(2016)을 가졌다.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선정되며 동시대 회화의 현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 되었다. 현재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스스로 논바이너리임을 밝히고 대명사 they/them을 사용한다. 몇 해 전부터 작가명을 SoiL Thornton으로 바꾸었다. 합판과 철망과 농담 — 바탕을 고르는 작업 손턴의 회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탕이다. 그는 표준적인 캔버스를 거의 쓰지 않는다. 거친 종이, 판재가 촘촘히 붙은 울타리용 나무판, 어린이 놀이매트용 폴리에스터 매트, 주워 온 합판, 골판지. 이 잡다한 재료 위에 아크릴과 스프레이 페인트, 오일 파스텔, 샤피 마커, 연필, 심지어 네일 폴리시까지 올라간다. 바탕이 이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위에 놓이는 형상은 언제나 반쯤은 그 성격과 싸우고 반쯤은 그 성격에 기댄다. 그 위에 그려지는 형상들은 추상과 구상 사이를 계속 흔들린다. 긴 팔로 지구...

스기모토 히로시: 시간을 찍는 카메라

  스기모토 히로시: 시간을 찍는 카메라 텅 빈 영화관의 스크린이 새하얗게 빛난다. 객석도, 장식도, 천장의 몰딩도 또렷한데 유독 스크린만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 Sugimoto Hiroshi)의 《극장(Theaters)》 연작이 포착한 것은 한 편의 영화 전체다. 상영이 시작되는 순간 대형 카메라의 셔터를 열고, 두 시간 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셔터를 닫는다. 24분의 1초씩 빠르게 이어지던 수십만 장의 프레임이 한 장의 인화지 위에 겹쳐지면, 남는 것은 의미를 잃은 빛, 그저 하얗게 번지는 시간이다. 이 단 한 컷의 이미지가 스기모토라는 작가의 방법론 전체를 압축한다. 그는 사진으로 시간 그 자체를 촬영한다. 스기모토 히로시(1948년 도쿄 출생)는 사진을 주축으로 조각, 설치, 건축, 연극 연출을 넘나드는 현대미술가다. 릿쿄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뒤 1970년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1974년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이미 도널드 저드, 댄 플래빈, 월터 드 마리아, 이사무 노구치, 백남준 등이 활동하던 소호의 미니멀리즘·개념미술 씬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고, 1980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은 이듬해 소나벤드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9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인전 이후 국제적 명성이 확고해졌고, 현재는 도쿄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박제된 자연을 다시 살려내다 — 《디오라마》 스기모토의 첫 번째 주요 연작은 1976년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시작된 《디오라마(Dioramas)》다. 박물관 전시실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박제 동물과 그려진 배경을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이 작업은, 어느 날 그가 문득 품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박제는 죽어 있고, 배경은 그림이다. 그런데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서 한쪽 눈을 감으면,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 그는 유리 반사와 주변 조명을...

정연두: 평범한 사람들의 무대

  정연두: 평범한 사람들의 무대 정연두(1969년 경남 진주 출생)는 사진, 영상, 퍼포먼스, 설치를 넘나드는 미디어 작가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갤러리 전속으로 활동한다. 원래 조각을 전공했지만 유학 시절 사진의 기록성과 연출 가능성에 매료되어 매체를 확장했고, 이후 25년 넘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번역해 왔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그의 영상 작품을 소장하면서 국제 무대에 자리 잡았다. 꿈을 실현해주는 사진작가 — 《내 사랑 지니》 정연두의 이름을 각인시킨 초기 연작은 2001년부터 시작된 《내 사랑 지니(Bewitched)》다. 여섯 나라를 돌며 만난 평범한 열네 명의 '현재'와 '꿈이 실현된 모습'을 두 장의 사진으로 나란히 병치한 작업이다. 서울 주유소의 청년은 F1 챔피언이 되고, 베이징 단란주점 웨이터는 팝스타로, 아이스크림 가게 종업원은 북극의 에스키모 전사로 변신한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꿈의 이미지' 옆에 현실의 이미지가 나란히 놓이면서 두 사진 사이에 묘한 틈이 생긴다. 주목할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기자가 아니라 실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 진짜 꿈을 들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CG를 쓰지 않고 의상·배경·소품을 직접 만들거나 섭외해 실제로 촬영했다는 것. 가짜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가짜를 만드는 과정에 현실의 공을 들이는 태도 — 정연두 작업의 윤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후속작 《원더랜드》에서 그는 유치원 교사로 4개월을 근무하며 아이들의 그림 1,200점을 모아 그 일부를 실제 장면으로 재현했다. 무대를 드러내는 무대 —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2008년 '올해의 작가' 전시에서 선보인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그의 '무대성'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 설치다. 관객은 먼저 거실...

이미래: 기계와 살 사이

  이미래: 기계와 살 사이 이미래(1988년생)는 지금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조각가 중 한 명이다. 2024년 10월, 런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 그의 전시 《Open Wound》가 열렸다. 현대자동차와 테이트가 함께하는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의 아홉 번째 작가이자,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 처음 선정된 한국 작가다. 35미터 높이로 비어 있는 터바인 홀은 매년 단 한 명의 작가에게만 허락되는 자리이며, 루이즈 부르주아와 올라퍼 엘리아손, 카라 워커, 애니카 이 같은 이름들이 거쳐 간 공간이다.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불과 2년 만의 도약이었다. 재료: 산업과 신체의 교차점 이미래의 작업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의 재료 목록을 보는 것이다. 시멘트, 레진, 철, 석고, 비계(scaffolding), 실리콘 튜브, 그리고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펌프 모터. 여기에 정체 모를 점액질의 액체 — 대개 오일과 실리콘을 섞은 혼합물이나 색을 입힌 유액 — 가 더해진다. 목록의 절반은 건설 현장에서 오고, 나머지는 의료·공업 설비에서 온다. 그가 이 재료들을 다루는 방식은 조각가보다 장기 이식자 혹은 공장 설계자에 가깝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조소와 영상매체를 복수전공하고 2013년부터 독립적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는 줄곧 한 가지를 밀어붙였다. 조각의 정지(靜止)를 깨는 것. 그의 작업은 대부분 움직인다. 펌프가 액체를 밀어 올리고, 천이 떨리고, 사슬이 흔들린다. 정지한 덩어리가 아니라 순환하는 체계다. 관객은 조각 옆을 지날 때마다 액체가 막힌 관을 지나가는 불규칙한 숨소리 같은 것을 듣게 된다. 조각이 '보이는 것'에서 '들리고 냄새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계보: 에바 헤세 이후의 조각 이미래의 작업은 20세기 후반 여성 조각가 계보 안에서 자주 읽힌다. 고무와 라텍스로 신체의 피로와 무게를 조각으로 옮긴 에바 헤세(Eva Hess...

문경원 & 전준호: 미지에서 온 질문들

  문경원 & 전준호: 미지에서 온 질문들 문경원과 전준호  문경원(1969년생)과 전준호(1969년생)는 2009년부터 듀오로 활동해 온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협업 작가다. 각자 독립된 작가로도 작업하지만, 두 이름이 나란히 놓일 때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언제나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규모와 질문을 담아낸다. 문경원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CalArts)에서 수학한 뒤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준호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서울과 부산, 서로 다른 도시에서 각자 작업하다가 프로젝트마다 만나는 방식 — 두 작가는 이 물리적 거리가 10년 넘은 협업을 지속시켜 온 일종의 완충재였다고 말한다. 의견이 충돌할 때 거리와 시간이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대표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 (News from Nowhere)〉 두 작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이다. 제목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왔다. 모리스의 원작이 19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이었다면, 문경원·전준호의 〈미지에서 온 소식〉은 그것을 후기-종말적(post-apocalyptic) 상상 속에 다시 세운다. 재난 이후의 세계, 그곳에서 되묻는 예술의 역할이 프로젝트의 중심축이다. 이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플랫폼 이라는 점이다. 디자인, 과학, 철학, 경제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의 다학제적 협업을 통해 영상, 설치, 아카이브, 출판물, 워크숍, 토크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확장된다. 2012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13)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14년째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 시리즈다. ...

서울의 밤을 달리는 댄서들, 김아영(Ayoung Kim)

  서울의 밤을 달리는 댄서들, 김아영(Ayoung Kim) 서울의 어느 밤. 한 여성이 오토바이 위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한다. 화면에는 배달 앱이 띄워져 있고, 그녀는 알고리즘이 계산해낸 최적의 경로를 따라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러다 어느 골목에서, 다른 시공간에서 온 또 다른 자신과 마주친다. 평행 세계의 자신. 같은 직업, 다른 궤적.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배달을 위해 달려 나간다. 이것은 SF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작가 김아영이 202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연작 〈딜리버리 댄서(Delivery Dancer)〉의 장면이다. 플랫폼 노동, 양자물리학의 가능 세계론, 가속주의적 신체. 이 모든 것이 한 여성 라이더의 하룻밤 안에 응축되어 있다. 서울과 런던을 거쳐 온 이력 김아영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학부를 마친 뒤 런던의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Chelsea College of Arts)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영상과 무빙 이미지, 사운드, 퍼포먼스, 소설과 텍스트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한 가지 매체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그의 작업을 정의한다. 그가 꾸준히 붙잡아 온 질문은 분명하다. 역사, 시대, 지정학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그 흐름에 저항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빗겨나는 존재들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중간 상태의 인물들, 경계에 놓인 시공간, 신화와 과학이 뒤섞이는 순간들. 그는 이런 것들을 모아 "합성적 이야기(synthetic storytelling)"라 부르는 자신만의 서사로 재구축한다. 그의 작업을 읽는 열쇠 김아영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키워드를 붙잡는 편이 좋다. 첫째, 지정학과 광물의 기억. 그는 석유, 가스, 희귀 광물 같은 자원이 어떻게 국경을 가로지르고,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며, 어떤 사람들을 이주시키는지에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왔다. 초기작 〈제페트, 그 공기를 삼키다〉(2014)부터 가스관...

TV를 캔버스 삼은 사람, 백남준(Nam June Paik)

  TV를 캔버스 삼은 사람, 백남준(Nam June Paik) 1984년 1월 1일, 전 세계 약 2,500만 명 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뉴욕과 파리의 스튜디오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었고, 작곡가 존 케이지가 연주를 시작하는 동안 퐁피두 센터에서는 요제프 보이스가 퍼포먼스를 펼쳤다. 로리 앤더슨, 앨런 긴즈버그, 머스 커닝햄, 샬럿 무어먼, 이브 몽탕, 피터 가브리엘—한 시대의 거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KBS도 이 방송을 생중계했고, 한국의 안방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위성이 만드는 '전 지구적 생방송'을 목격했다. 이 불가능에 가까운 기획을 연출한 사람이 바로 백남준 이다. 제목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예언한 빅브라더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한국에서 태어난 한 예술가의 정면 반박이었다. "오웰, 당신은 좀 틀렸어요"—이것이 그의 인사였다. 서울에서 도쿄, 뮌헨, 뉴욕으로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서울 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홍콩과 일본으로 피난했다. 도쿄대학교에서 미학과 음악사를 공부 하며 아방가르드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에 대한 논문으로 졸업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출발이 미술이 아니라 음악 이었다는 점이다. 작곡가로서의 훈련은 그의 평생 작업에 '시간'과 '리듬'을 새겨 넣었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간 그는 슈토크하우젠이 이끌던 쾰른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 에서 활동하며 유럽 전위예술의 한복판에 섰다. 이때 만난 사람이 존 케이지였다. 케이지의 '우연성의 음악'은 그의 예술관을 뒤집었다. 이 시기 그는 플럭서스(Fluxus) 그룹에 합류해 피아노를 부수고, 넥타이를 자르고, 바이올린을 머리 위로 들고 천천히 내리쳐 부수는 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전통 예술의 권위를 그야말로 몸으로 부수는 시기였다. 비디오아트의 탄생 그리고...

이미지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이미지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2009년, 미술계를 뒤흔든 짧은 에세이 한 편이 등장했다. 제목은 「가난한 이미지를 옹호하며(In Defense of the Poor Image)」 . 저해상도의, 압축되고, 복제되고, 불법 다운로드되고, 워터마크가 박힌 채 인터넷을 떠도는 그 '질 낮은' 이미지들—우리가 매일 스크롤하며 지나치는 바로 그 이미지들이 실은 이 시대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라고, 이 에세이는 선언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히토 슈타이얼. 그리고 그는 에세이를 쓰는 동시에 틈틈이 비디오 작품도 만들고 있었다.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영화 감독이자, 교수이자, 미술계에서 가장 명료한 목소리로 디지털 권력을 해부하는 비평가. 현대미술에서 '에세이 필름(essay film)'을 하나의 장르로 정립한 인물이다. 독일과 일본, 철학과 영화 사이에서 히토 슈타이얼은 1966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본인 생화학자, 아버지는 독일인 물리학자였다. 과학의 언어와 두 문화의 경계가 그의 유년을 가로질렀고,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작업이 어째서 그토록 '국경을 넘나드는 이미지'에 집착하는지를 설명한다. 그의 학력은 독특하다. 일본 영화학교(Japan Institute of the Moving Image)에서 수학한 뒤 뮌헨 영상·영화대학을 거쳤고, 빈 미술아카데미에서 철학 박사학위 를 받았다. 영화로 출발해 철학으로 단단히 뿌리내린, 드문 조합이다. 2024년까지 베를린예술대학(UdK)에서 뉴미디어 예술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뮌헨 미술아카데미에서 '동시대 디지털 미디어' 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가 만든 '프록시 정치 연구센터(Research Center for Proxy Politics)'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베라 톨만, 보아즈 레빈과 함께 공동 설립한 연구 플랫폼으로, 디지털 시대의 권력과 대리(proxy) 구조를 미술의 언어로 추적해왔다...

일상의 사물 속에 세계를 접어 넣는 사람, 양혜규(Haegue Yang)

  일상의 사물 속에 세계를 접어 넣는 사람, 양혜규(Haegue Yang)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중에 거대한 블라인드 기둥들이 매달려 있다. 일상적인 베네치아 블라인드를 수백 겹 엮어 만든 구조물. 바람이 불면 얇은 슬랫들이 사락거리고, 조명이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투과시키며, 때로는 이 덩어리 전체가 회전한다. 가까이 가면 향이 풍기고, 뒤로 물러나면 거대한 추상 조각이 된다. 블라인드가 이토록 이상한 사물이었던가, 하는 질문과 함께 관람객은 양혜규 의 세계로 이미 들어서 있다. 서울과 베를린, 두 도시를 오가며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1999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서 석사학위 를 받았다. 이후 30여 년간 서울과 베를린 두 도시를 오가며 작업해왔다. 이 이중 거주는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그의 작업 자체를 관통하는 조건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접속해 있는 디아스포라적 감각—그것이 그의 설치 언어를 만들어냈다. 경력은 일찌감치 국제 무대에서 펼쳐졌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 로 선정되어 〈접힌 신문〉 등 대표작을 선보였고, 이후 뉴욕 MoMA(2019),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2018), 파리 퐁피두센터(2016),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2024)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었다. **2018년 볼프강 한 상(Wolfgang Hahn Prize), 2022년 제13회 베네세상(Benesse Prize)**도 그의 이름 옆에 붙어 있다. 《아트리뷰(ArtReview)》가 선정한 Power 100 리스트에서 2024년 48위, 2025년에도 상위권 을 유지하며, 한국 작가로는 가장 꾸준히 세계 미술계의 중심부를 지키는 인물이 되었다. 일상의 사물을 낯설게 만드는 기술 양혜규의 재료를 나열해보면 이상하리만치 평범하다. 베네치아 블라인드, 건조대, 전구, 벨소리,...

갤러리에서 밥을 짓는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니자

  갤러리에서 밥을 짓는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니자 1992년, 뉴욕 소호의 303 갤러리. 관람객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주친 건 흰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었다. 갤러리의 사무실 공간이 통째로 임시 주방으로 바뀌어 있었고, 태국 카레 냄새가 풍겨왔다. 한 태국 작가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방문객은 누구나 자리에 앉아 무료로 식사할 수 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Untitled (Free)〉. 그리고 이 요리사가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다. 국경 없는 성장기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196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국인 외교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태국인, 그는 에티오피아, 캐나다,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성장했다. 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 예술대학(Ontario College of Art)을 거쳐, 시카고 예술대학 부속 연구 프로그램과 뉴욕 휘트니 독립 연구 프로그램(Whitney Independent Study Program)에서 수학했다. 작가 자신은 작업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 시작점은 낯선 장소에서, 나 자신으로부터도 낯선 곳에서 내 정체성을 찾는 일이었다." 세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민자이자 디아스포라의 감각—그는 이것을 약점이 아니라 작업의 엔진으로 삼았다. 국경과 문화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권이다. '관계 미학'이라는 이름의 혁명 1990년대 초 현대미술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프랑스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미술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 그 자체 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가장 선명한 얼굴이 바로 티라바니자였다. 관계 미학의 핵심은 단순하다. 작품은 물건이 아니라 상황 이다. 그림이 벽에 걸려 관람...

유토피아의 폐허를 조각하는 사람, 이불(Lee Bul)

  유토피아의 폐허를 조각하는 사람, 이불(Lee Bul) 1989년 어느 날의 한국 갤러리에서 20대 여성 작가가 등산용 밧줄에 몸을 고정한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최승자의 시를 읊는다. 관객들에게 막대사탕이 건네진다. 퍼포먼스는 두 시간 동안 이어지고,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와 당황한 관객들이 작가를 끌어내린다. 이 무모하고 서늘한 장면을 연출한 사람이 바로 이불 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만든 장본인. 영주에서 베니스까지 이불은 1964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후반 군부독재 말기 한국의 폭압적 공기 속에서, 그는 몸 자체를 재료로 쓰는 퍼포먼스와 그로테스크한 소프트 조각(soft sculpture)을 선보이며 등장했다. 방독면과 군화, 과장된 어깨의 흰 드레스를 한 몸에 걸친 1989년 퍼포먼스는 군부정치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한 화면에 압착시킨 이미지였다. 그의 커리어는 놀라울 정도로 일찍 세계로 뻗어나갔다. 1998년 휴고 보스상 최종 후보,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 한국 작가가 세계 미술의 중심부에서 동시대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이후 2012년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 을 열었고,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1999년과 2019년 두 차례 초청된 유일한 한국 작가 가 되었다. 2019년에는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충돌하는 의미들의 세계 이불의 작업을 하나의 주제로 묶기는 어렵다. 그는 늘 대립하는 의미들이 충돌하는 지점 에 서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정신과 몸, 빛과 어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의 작품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동시에 드러낸다. 〈사이보그(Cyborg)〉 연작(1997~). 여성의 몸을 본뜬 반투명 수지 조각. 그러나 팔이 없거나, 다리가 잘려 있거나, 몸통이 비어 있다. 기계와 융합된 이 미래의 여성 신체는 SF적 이상향이면서 동시...

나무에 새긴 90년의 시간, 조각가 김윤신에 대하여

전기톱을 든 90세 조각가, 김윤신 용인 호암미술관. 전시장 입구를 지나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거친 나무의 질감과 톱자국이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대리석도, 정교하게 마감된 청동도 아니다. 나무의 밑동과 옹이, 껍질, 그리고 전기톱이 지나간 깊은 홈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이 작품들을 만든 사람은 올해 91세의 여성 작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지금도 직접 전기톱을 든다. "난 한결같은 '동서남북' 작가" 김윤신은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전쟁을 유년기에 겪고, 폐허가 된 1950년대 한국에서 미대에 진학한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4년에는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했다. 당시 파리 유학을 마친 여성 조각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귀국 후 홍익대·상명대·성신여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한국여류조각가회 설립을 주도 했지만, 그의 인생은 또 한 번 방향을 튼다. 조카의 "그곳에는 좋은 나무가 많다"는 한 마디에 이끌려, 1984년 중년의 나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떠난 것이다. 이후 멕시코, 브라질을 오가며 재료 탐구를 이어갔고,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김윤신미술관을 열었다.  40여 년간 아르헨티나에 거주했던 작가는 2022년 한국을 방문했다가 좋은 기회가 계속 이어져 최근 한국으로 이주했다. 원산에서 서울로, 파리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그의 삶 자체가 이미 대륙 네 곳을 건너온 거대한 조각이다.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김윤신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이 여덟 글자를 통과해야 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반세기 가까이 그가 붙들어온 사유의 결정체다. 두 개의 것이 만나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다시 둘로 나뉜다. 합(合)과 분(分)이 끝없이 반복되며 순환한다—동양철학의 오래된 그림이다. 작업 현장에서 이 철학은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트레버 팽글런(Trevor Paglen)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트레버 팽글런(Trevor Paglen) 2013년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센터폴드에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의 광활한 부지, 조명 아래 주차장에 둘러싸인 거대한 박스형 건물. 미국 국가안보국(NSA) 본부였다. 스노든 폭로가 한창이던 시기, 대부분의 미국인조차 처음 본 장면이었다. 이 사진을 위해 한 예술가가 헬리콥터를 빌려 야간 비행을 감행했다. 그의 이름이 트레버 팽글런 이다. 미술가이자 지리학 박사, 조사 저널리스트이자 엔지니어. 무엇보다 "감춰진 것을 시각화하는 사람"이다. 공군기지에서 자란 지리학자 팽글런은 1974년 메릴랜드 캠프 스프링스에서 태어나 미국 여러 공군기지를 떠돌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울타리 너머의 군 시설을 보며 자란 경험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할 주제를 일찌감치 심어두었다. 분명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없는 풍경들. 학력은 이례적이다. UC 버클리 학사, 시카고 예술대학(SAIC) 예술 석사(MFA), 그리고 UC 버클리에서 지리학 박사학위 를 받았다. 예술가가 지리학 박사인 경우는 드물다. 팽글런에게 지리학은 지도 제작이 아니라 공간과 권력의 얽힘 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의 예술은 이 질문을 시각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세 개의 지층 ① 군사-감시의 풍경. 출발점은 미국 서부 사막이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비밀 군사 시설들이 숨어 있는 네바다와 유타. 팽글런은 천체망원경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없는' 시설을 촬영했다. 흐릿한 이미지는 한계지만 동시에 증언이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사진." 2010년 사진집 《Invisible: Covert Operations and Classified Landscapes》로 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다. ② 우주와 위성. 시선은 곧 하늘로 올라갔다. 군사 정찰 위성, NSA의 해저 광케이블, 기밀 우주비행체까지. 2012년...

사탕 한 알의 무게,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Felix Gonzalez-Torres)

사탕 한 알의 무게,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시카고 미술관 293 갤러리의 한쪽 구석. 색색의 셀로판으로 포장된 사탕이 바닥에 산처럼 쌓여 있다. 정확히 175파운드(약 79kg). 관람객들은 다가가 사탕을 집어 들어 주머니에 넣거나, 입에 넣고 돌아선다. 그러면 사탕 더미는 조금씩 줄어든다. 한 사람의 몸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처럼. 이 사탕 더미의 이름은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한 연인의 초상이자 묘비이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슬픈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다. 짧았지만 깊었던 39년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1957년 쿠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여동생 글로리아와 함께 마드리드로 보내져 고아원에 머물렀고, 그해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했다.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해 휘트니 독립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사진 학사, 1987년 뉴욕대학교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인 1987년, 그의 삶을 바꾼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공동체 활동에 헌신한 예술가 집단 '그룹 머티리얼(Group Material)'에 합류했고, 연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이 에이즈 진단을 받는다. 4년 뒤 로스는 세상을 떠났고, 1996년 곤잘레스-토레스 자신도 마이애미에서 에이즈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불과 38세였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파장은 길다. 그는 80~90년대 뉴욕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컬어지며, 현대미술사에 신화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미니멀리즘의 문법, 그러나 가득 찬 감정 곤잘레스-토레스의 재료는 놀라울 만큼 평범하다. 사탕. 전구. 종이 더미. 시계. 퍼즐. 구슬. 일상의 물건들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가까운 언어로 구성해, 정체성과 젠더의 축을 흔들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계를 재배치한다. 미...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2012년 독일 카셀의 도쿠멘타. 관객들이 한 퇴비 더미 근처에 멈춰 섰다. 한쪽 다리가 분홍색으로 칠해진 흰 개 '휴먼(Human)'이 어슬렁거리고, 누워 있는 여인의 석조 조각상 얼굴에는 살아 있는 벌집이 올라가 있다. 이곳은 갤러리가 아니라 독일 공원의 잊힌 구석이었다. 작품은 관람객에게 무관심하게 '스스로 굴러갔다'. 이 장면을 만든 사람이 바로 피에르 위그다. 피에르 위그, 그는 누구인가 피에르 위그는 196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Marie Claire Korea 파리 국립고등예술학교(École 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수학 Monthlyart 했다.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2002년 휴고 보스 프라이즈를 받으며 eai 일찍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거주지는 흥미롭게도 계속 바뀐다. 2016년 즈음에는 산티아고에서 활동 Seoul 했고, 현재는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 Hauser & Wirth 한다. 파리, 뉴욕, 산티아고—대륙을 가로지르는 노마드적 삶 자체가 그의 작업에 스며 있다. "전시는 감각을 가진 환경과의 만남이다" 피에르 위그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조각가도, 영상작가도, 설치미술가도 아니다. 영화와 조각, 공공 개입부터 살아 있는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로 작업 Google Arts & Culture 한다. 그의 작품 목록에는 개와 원숭이, 벌과 박테리아, AI와 양자 시뮬레이션이 '참여자'로 등장한다. 작가 자신의 말이 가장 명료하다. "전시는 감각을 가진 환경(sentient milieu)과의 만남이다. 그 안에서 사건과 요소들이 펼쳐지며 새로운 상호의존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Hauser & Wirth 그에게 전시는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이벤트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