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한 알의 무게,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Felix Gonzalez-Torres)
사탕 한 알의 무게,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시카고 미술관 293 갤러리의 한쪽 구석. 색색의 셀로판으로 포장된 사탕이 바닥에 산처럼 쌓여 있다. 정확히 175파운드(약 79kg). 관람객들은 다가가 사탕을 집어 들어 주머니에 넣거나, 입에 넣고 돌아선다. 그러면 사탕 더미는 조금씩 줄어든다. 한 사람의 몸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처럼.
이 사탕 더미의 이름은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한 연인의 초상이자 묘비이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슬픈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다.
짧았지만 깊었던 39년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1957년 쿠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여동생 글로리아와 함께 마드리드로 보내져 고아원에 머물렀고, 그해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했다.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해 휘트니 독립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사진 학사, 1987년 뉴욕대학교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인 1987년, 그의 삶을 바꾼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공동체 활동에 헌신한 예술가 집단 '그룹 머티리얼(Group Material)'에 합류했고, 연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이 에이즈 진단을 받는다. 4년 뒤 로스는 세상을 떠났고, 1996년 곤잘레스-토레스 자신도 마이애미에서 에이즈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불과 38세였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파장은 길다. 그는 80~90년대 뉴욕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컬어지며, 현대미술사에 신화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미니멀리즘의 문법, 그러나 가득 찬 감정
곤잘레스-토레스의 재료는 놀라울 만큼 평범하다. 사탕. 전구. 종이 더미. 시계. 퍼즐. 구슬. 일상의 물건들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가까운 언어로 구성해, 정체성과 젠더의 축을 흔들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계를 재배치한다.
미니멀리즘이 감정을 제거한 자리를 만들었다면, 곤잘레스-토레스는 그 빈 자리에 사랑과 상실을 채워 넣었다. 겉으로 보면 그저 사탕 더미, 그저 시계 두 개, 그저 종이 스택이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을 읽는 순간, 그리고 그 작품이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의 가장 특징적인 장치는 모든 제목이 〈"Untitled"〉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괄호 안에 숨겨진 부제가 작품에 구체적 감정을 불어넣는다. 〈"Untitled" (Perfect Lovers)〉.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Untitled" (Fear)〉. 무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사적인 이름들이다.
심장을 멎게 하는 두 작품
〈"Untitled" (Perfect Lovers)〉, 1991 — 두 개의 시계
나란히 걸린 동일한 벽시계 두 개. 같은 시각으로 맞춰져 있지만, 배터리가 조금씩 다르게 소모되고 톱니가 미세하게 어긋나며, 언젠가는 반드시 시간이 틀어진다. 이 작품은 에이즈를 앓고 있던 연인 로스 레이콕과 그의 피할 수 없는 쇠락과 죽음을 상징한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만들기 3년 전, 로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시계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들은 우리의 시간이에요. 시간은 우리에게 참으로 너그러웠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달콤한 승리의 맛을 새겼어요. 우리는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 만남으로써 운명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산물이므로, 그 공을 돌립니다—시간에게. 우리는 동기화되어 있어요, 이제 영원히. 사랑해요."
그러므로 이 작품은 단순한 쌍시계 설치가 아니다. 사랑의 편지, 죽어가는 연인에게 건네는 이별의 선물, 그리고 결국 어긋날 수밖에 없는 모든 관계에 대한 조용한 묵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이 자신과 로스의 이중 초상이자, 에이즈 위기의 한가운데 있던 한 공동체 전체의 초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 175파운드의 사탕
첫 단락에서 소개한 그 작품이다. 로스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1991년에 제작된 이 설치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175파운드 분량의 사탕 더미로 구성된다. 175파운드는 로스가 건강했을 때의 이상 체중이다.
매일 사탕은 조금씩 사라지지만, 미술관은 매일 사탕을 다시 채워 넣는다. 그렇게 로스의 알레고리적 몸은 영원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로스는 죽었지만, 매일 부활한다. 사랑은 소진되지만, 다시 보충된다. 관람객은 사탕을 먹으며 무심코 이 애도 의례에 동참하게 된다.
이 작품이 가진 힘은 그 단순함의 잔인함에 있다. 작품 설명을 읽기 전에는 그저 무해한 사탕 더미다. 설명을 읽은 후에는, 입안의 사탕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관객이 완성하는 미술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이 급진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미술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나누는 행위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종이 스택 작품은 관객이 한 장씩 가져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탕 더미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한 작품의 '이상적 무게'는 있지만, 실제 전시 방식은 전시장마다 달라도 좋다.
그의 작품은 이후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이라 불리게 될 흐름의 선구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매번 새롭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에게 미술 전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까웠다.
한국에서의 기억,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
한국 관객에게도 그의 이름이 각인된 시간이 있다. 2012년, 서울 플래토(PLATEAU)와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서 곤잘레스-토레스 전시가 열렸다. 작가 사후 16년이 지난 뒤였지만, 그의 사탕 더미 앞에서 한국의 관람객들도 사탕 한 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2024년부터 2026년 사이, 그의 작업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 🇺🇸 〈Felix Gonzalez-Torres: Always to Return〉 — 2024~2025년,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국립초상화미술관. 30년 만에 워싱턴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
- 🇭🇰 〈Somewhere better than this place / Nowhere better than this place〉 — 2025년 11월 19일 ~ 2026년 2월 28일, 홍콩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 홍콩에서 열린 그의 첫 전시
- 🇲🇽 La Cuadra, 멕시코시티 — 2026년 2월 8일 ~ 4월 5일.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이 1968년 설계한 개인 마구간 공간에서,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과 바라간의 건축 사이 시적 대화를 제안한 전시
- 🇪🇸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Reina Sofía) — 2026년 5월 개막 예정
세계 미술계가 그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팬데믹 이후, 혐오와 분열이 다시 고개를 드는 지금, 그의 작품이 던진 질문—누가 공공의 일부인가, 사랑과 상실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이 다시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당신의 주머니 속 사탕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두 가지 선택을 마주한다. 사탕을 집을 것인가, 말 것인가. 종이 한 장을 가져갈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쪽이든 당신은 이미 작품의 일부가 된다. 가져가는 행위는 파괴이자 보존이고, 소비이자 기억이다.
어쩌면 예술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작품을 본 뒤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드는 것이다. 곤잘레스-토레스는 사탕 한 알로 그 일을 해냈다.
오늘, 누군가의 주머니 속 사탕 한 알이 여전히 로스의 몸 일부다. 그리고 그 달콤함은 여전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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