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을 달리는 댄서들, 김아영(Ayoung Kim)

 

서울의 밤을 달리는 댄서들, 김아영(Ayoung Kim)

서울의 어느 밤. 한 여성이 오토바이 위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한다. 화면에는 배달 앱이 띄워져 있고, 그녀는 알고리즘이 계산해낸 최적의 경로를 따라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러다 어느 골목에서, 다른 시공간에서 온 또 다른 자신과 마주친다. 평행 세계의 자신. 같은 직업, 다른 궤적.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배달을 위해 달려 나간다.

이것은 SF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작가 김아영이 202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연작 〈딜리버리 댄서(Delivery Dancer)〉의 장면이다. 플랫폼 노동, 양자물리학의 가능 세계론, 가속주의적 신체. 이 모든 것이 한 여성 라이더의 하룻밤 안에 응축되어 있다.


서울과 런던을 거쳐 온 이력

김아영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학부를 마친 뒤 런던의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Chelsea College of Arts)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영상과 무빙 이미지, 사운드, 퍼포먼스, 소설과 텍스트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한 가지 매체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그의 작업을 정의한다.

그가 꾸준히 붙잡아 온 질문은 분명하다. 역사, 시대, 지정학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그 흐름에 저항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빗겨나는 존재들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중간 상태의 인물들, 경계에 놓인 시공간, 신화와 과학이 뒤섞이는 순간들. 그는 이런 것들을 모아 "합성적 이야기(synthetic storytelling)"라 부르는 자신만의 서사로 재구축한다.


그의 작업을 읽는 열쇠

김아영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키워드를 붙잡는 편이 좋다.

첫째, 지정학과 광물의 기억. 그는 석유, 가스, 희귀 광물 같은 자원이 어떻게 국경을 가로지르고,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며, 어떤 사람들을 이주시키는지에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왔다. 초기작 〈제페트, 그 공기를 삼키다〉(2014)부터 가스관을 둘러싼 동유럽의 지정학을 탐구했고, 이후 작업에서도 땅속에 묻힌 자원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둘째, 신화와 SF의 결합. 고대의 신화적 원형과 가까운 미래의 기술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충돌시킨다. 그의 세계에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은 시간순으로 배열되지 않는다. 모두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간섭한다.

셋째, 게임 엔진과 생성형 AI. 최근 작업에서 그는 언리얼 엔진 같은 3D 게임 엔진, 모션 캡처, 그리고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화와 게임의 경계, 실사와 시뮬레이션의 경계가 그의 화면에서 흐려진다.


〈딜리버리 댄서〉 연작 — 플랫폼 노동에 대한 예언

2022년 김아영은 자신의 대표 시리즈가 될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5분짜리 단채널 영상으로, 서울을 배경으로 한 두 명의 여성 라이더 '엔 스톰(Ernst Mo)'과 '엠 모(Ernstmo)'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제목의 '댄서'는 은유다. 알고리즘의 지시에 따라 도시를 질주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움직임을, 그는 댄스로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2023년 오스트리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의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 골든 니카상을 한국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 이어 2024년 호주 ACMI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는 3채널 영상 설치로 확장되었고, 연작은 꾸준히 새로운 편을 더해가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이루고 있다.

이 연작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분명하다. 스마트폰 앱이 우리의 출퇴근을, 식사를, 심지어 하루의 동선까지 결정하는 시대. 우리 중 많은 이가 이미 어떤 형태로든 '댄서'로 살아가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의 2025~2026

최근 2년간 김아영의 이름은 그야말로 국제 미술계 곳곳에 동시에 올라와 있다.

2025년 2월부터 7월,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Hamburger Bahnhof)에서 독일 기관 첫 개인전 《Many Worlds Over》가 열렸다. 독일 국립 현대미술관급에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일은 흔치 않다.

2025년 5월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LG 구겐하임 어워드(LG Guggenheim Award) 수상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 작가 중 최초 수상. 이 상은 2023년 LG와 뉴욕 구겐하임이 공동 출범한 5년간의 프로그램으로, 이전 수상자는 스테파니 딩킨스(2023), 슈 리 청(2024)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6년의 수상자는 트레버 팽글런이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전 세계 작가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들 사이에 김아영이 놓인 것이다.

2025년 11월 6일부터 2026년 3월 16일까지, 뉴욕 MoMA PS1에서 미국 첫 개인전 《Ayoung Kim: Delivery Dancer Codex》가 열렸다. 현재 MoMA PS1을 이끄는 큐레이터 루바 카트립(Ruba Katrib)이 기획했으며, 이는 〈딜리버리 댄서〉 3부작이 한자리에 모인 첫 전시였다. 긱 이코노미와 플랫폼 노동, 양자 물리학의 가능 세계론, 가속주의적 신체 개념이 PS1 3층 전체를 채웠다.

같은 시기 그의 이름은 테이트 모던,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도쿄 모리미술관, 코펜하겐 컨템포러리, 홍콩 M+ 등에서도 동시에 걸렸다. 한 작가가 한 해에 이만큼의 세계적 기관에서 동시에 주목받는 일은 한국 미술사에서도 흔치 않다.


2025년을 정의한 예술

2025년 12월,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 뉴스(Artnet News)는 세계적인 큐레이터들—MoMA PS1 디렉터 코니 버틀러, 런던 서펜타인 관장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등—이 뽑은 '2025년을 정의한 예술' 리스트를 발표했다. 그 첫머리에 놓인 것이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였다. 한 해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한국 작가의 이름이 가장 앞자리에 오른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글을 마치며

김아영의 작업 앞에 서면 관람객은 자신이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스마트폰의 알고리즘이 하루의 리듬을 결정하고, AI가 이미지를 대신 만들어내며, 국경은 지도 위에서보다 데이터 위에서 먼저 그어지는 시대. 그의 영상 속 라이더들이 달리는 그 도시는, 사실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바로 그 도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이 현실을 단순히 고발하지 않는다. 그 안에 숨어 있는 기이한 가능성들—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한 마주침, 시스템의 틈새로 빠져나가는 몸짓,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끝내 빗겨나는 존재들—을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SF는 어둡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른 경로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김아영은 지금 한국이 세계에 내놓은 가장 동시대적인 목소리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제 막 가장 큰 무대에서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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