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 앙로(Camille Henrot): 데스크탑 위에서 세계를 다시 쓰다
카밀 앙로: 데스크탑 위에서 세계를 다시 쓰다
검은 화면 위로 창이 하나씩 열린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수장고의 조개 표본,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누군가 손톱을 다듬는 영상, 우주의 성운 사진, 실험실에서 꺼내 놓은 뱀의 해부도.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장면이 팝업처럼 겹쳐지고, 그 위로 랩 비트에 실린 나지막한 음성이 세계 각지의 창조 신화를 낭송한다. "태초에 땅도 물도 없었다. 눈네차하라는 하나의 언덕이 있었다. 태초에는 양자 요동이 있었다." 카밀 앙로(Camille Henrot)의 13분짜리 영상 《그로스 파티그(Grosse Fatigue)》(2013)는 정확히 이 방식으로 우주의 시작을 다시 쓴다. 과학과 신화, 데이터베이스와 구전, 컴퓨터 데스크탑과 원시 우주가 한 화면 위에 겹쳐 있다.
카밀 앙로(1978년 파리 출생)는 비디오, 조각, 드로잉, 회화, 설치를 넘나드는 프랑스 작가다.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ENSAD)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졸업 후 한동안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미술과 영화, 광고가 교차하는 현장을 경험했다. 2013년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로스 파티그》로 유망 작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받으며 단숨에 국제 무대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이어 남준 백 상(2014), 에드바르트 뭉크 상(2015)을 잇달아 수상했다. 2017년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예술문화훈장 오피시에를 수여했다. 현재 파리, 뉴욕,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한다.
브라우저 창으로 쓴 창세기 — 《그로스 파티그》
《그로스 파티그》는 2013년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제작되었다. 당시 앙로에게 주어진 것은 수장고와 전 세계 종(種)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권이었다. 그는 박물관의 창고, 표본실, 도서관을 돌며 대상을 촬영하고,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뒤섞어 하나의 우주 창조 서사를 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컴퓨터 데스크탑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창이 포개지고, 스크롤이 내려가고, 커서가 움직인다. 관객이 인터넷에서 지식을 검색할 때와 거의 같은 화면 문법이 예술의 화면 문법이 된다.
이 작업은 단순한 몽타주가 아니다. 앙로는 서구 과학의 분류 체계와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의 창조 신화를 동등한 층위에 놓으며, '백과사전'이라는 근대적 이상이 결국 여러 이야기의 과잉 속에서 피로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작품의 제목 '그로스 파티그' 자체가 프랑스어로 '극심한 피로'를 뜻한다. 정보가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만들어 낸 소진 상태 — 그녀의 카메라는 바로 그 지점을 응시한다. 이 작품은 현재 아트뉴스와 프리즈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미술 작품 목록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백과사전이라는 꿈 — 《창백한 여우》
2014년 런던 치즈네일 갤러리(Chisenhale Gallery)에서 선보인 《창백한 여우(The Pale Fox)》는 《그로스 파티그》의 문제의식을 공간으로 확장한 대형 설치다. 전시장 전체가 짙은 파란색으로 칠해지고, 네 벽면을 따라 수백 점의 오브제 — 조개, 돌, 식물 표본, 스마트폰, 장난감, 책, 자신의 드로잉 — 가 거대한 큐레이토리얼 벽처럼 배치된다. 제목은 도곤족의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트릭스터 '창백한 여우'에서 가져왔다. 관객은 이 방을 돌며 세계를 질서 지우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질서가 늘 다시 흐트러지는 방식 — 도곤족 신화에서 창백한 여우가 질서를 깨뜨리는 그 자리 — 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설치는 이후 베텔스만 미술관, 뉴욕, 도쿄 등으로 순회하며 앙로의 대표 장소특정적 작업으로 자리 잡았다.
일주일이라는 조각 — 《데이즈 아 독스》
2017년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는 앙로에게 약 1만 제곱미터에 가까운 전관을 내주는 이례적인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제안했다. 이에 답한 전시가 《데이즈 아 독스(Days Are Dogs)》다. 주제는 놀라울 만큼 일상적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의 각 요일을 독립된 방으로 구성한 것이다. 각 요일은 로마 신화의 신과 신경증적 감정 하나씩에 배당된다. 월요일은 달과 우울, 화요일은 전쟁과 분노, 금요일은 비너스와 욕망, 일요일은 태양과 권태. 회화, 대형 청동 조각, 벽지, 전화 설치 〈홋라인(Hotline)〉까지 거의 모든 매체가 각 방에 개입한다.
앙로는 일상의 리듬이 얼마나 깊이 종교적·신화적 구조 위에 얹혀 있는지를 가볍고도 집요하게 드러낸다. 주말의 해방감, 월요일의 우울, 수요일의 공허 —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의 파동이 사실은 수천 년의 신화와 행성 체계에 이미 새겨져 있다는 사실 등을 드러낸다. 이 전시에서 그녀는 인류학자이자 신화학자, 정신분석가의 시선을 동시에 작동시킨다.
조각과 드로잉 — 매체를 건너뛰는 방식
앙로의 조각 작업은 영상만큼이나 중요한 축이다. 브론즈와 대리석으로 제작한 생물 형상 — 뱀처럼 꼬인 전화 코드,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변형된 신체, 기이하게 늘어난 동물 — 은 고전 조각의 물성과 만화적 왜곡을 동시에 품는다. 잉크 드로잉 연작은 자기계발서, 육아 매뉴얼, 점성술 차트, 심리학 도표 같은 '일상의 지식 장르'에서 문장을 끌어와 이미지와 충돌시킨다. 결국 그녀의 전방위적 실천을 하나로 묶는 원칙은 한 가지다. 현대인이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체계 — 종교, 과학, 신화, 데이터, 심리학 — 가 언제나 불완전한 채로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는 사실.
글을 마치며
앙로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태도가 선명하게 남는다. 그는 지식을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지식이 흘러넘치는 현장을 관객 앞에 데려다 놓는다. 스미스소니언의 수장고, 도곤족의 신화, 일주일의 요일 체계, 자기계발서의 문장, 점성술의 원형 — 그녀가 다루는 재료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왔지만, 모두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설명하려고 만든 장치라는 점에서 같다. 그녀의 작업은 그 장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겹치는 지점을 드러낸다. 베니스 은사자, 남준 백 상, 팔레 드 도쿄 카르트 블랑슈라는 궤적은 화려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는 여전히 컴퓨터 데스크탑 위에서 팝업처럼 열렸다 사라지는 수십 개의 창, 그리고 그 창 너머에서 조용히 낭송되는 창조 신화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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