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 평범한 사람들의 무대

 

정연두: 평범한 사람들의 무대

정연두(1969년 경남 진주 출생)는 사진, 영상, 퍼포먼스, 설치를 넘나드는 미디어 작가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갤러리 전속으로 활동한다. 원래 조각을 전공했지만 유학 시절 사진의 기록성과 연출 가능성에 매료되어 매체를 확장했고, 이후 25년 넘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번역해 왔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그의 영상 작품을 소장하면서 국제 무대에 자리 잡았다.


꿈을 실현해주는 사진작가 — 《내 사랑 지니》

정연두의 이름을 각인시킨 초기 연작은 2001년부터 시작된 《내 사랑 지니(Bewitched)》다. 여섯 나라를 돌며 만난 평범한 열네 명의 '현재'와 '꿈이 실현된 모습'을 두 장의 사진으로 나란히 병치한 작업이다. 서울 주유소의 청년은 F1 챔피언이 되고, 베이징 단란주점 웨이터는 팝스타로, 아이스크림 가게 종업원은 북극의 에스키모 전사로 변신한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꿈의 이미지' 옆에 현실의 이미지가 나란히 놓이면서 두 사진 사이에 묘한 틈이 생긴다.

주목할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기자가 아니라 실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 진짜 꿈을 들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CG를 쓰지 않고 의상·배경·소품을 직접 만들거나 섭외해 실제로 촬영했다는 것. 가짜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가짜를 만드는 과정에 현실의 공을 들이는 태도 — 정연두 작업의 윤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후속작 《원더랜드》에서 그는 유치원 교사로 4개월을 근무하며 아이들의 그림 1,200점을 모아 그 일부를 실제 장면으로 재현했다.


무대를 드러내는 무대 —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2008년 '올해의 작가' 전시에서 선보인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그의 '무대성'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 설치다. 관객은 먼저 거실처럼 꾸며진 방에 들어가 70분짜리 영상을 본다. 영상은 시골 풍경에서 도시의 아파트까지 여섯 개의 전혀 다른 공간을 끊김 없이 흘러간다. 방을 나서면 넓은 전시장이 펼쳐지고, 그곳에는 방금 본 영상에 등장한 카메라, 조명, 소품, 세트 장비가 그대로 놓여 있다. 70분 영상이 바로 그 공간에서 실제로 끊김 없이 찍힌 것이다. '기록된 허구'와 '허구를 만든 현장'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정연두는 무대 뒤를 숨기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역사를 이어붙이다 — 《소음 사중주》와 《백년 여행기》

2019년 4채널 영상 〈소음 사중주(Noise Quartet)〉는 그의 관심사가 개인 서사에서 역사적 기억으로 확장된 분기점이다. 홍콩 시위의 20대 청년, 광주 5·18 유가족을 위해 '오월 어머니의 집'을 세운 안성례, 대만 메이리다오 사건으로 투옥된 노인, 오키나와에서 반전 미술관을 운영하는 사키마. 서로 무관해 보이는 네 명의 하루가 네 스크린에 동시에 걸리며 '억압받은 기억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공통의 리듬으로 묶인다.

이 확장의 정점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였다.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의 에네켄(선박용 섬유를 만드는 용설란) 농장으로 이주한 1,033명의 한인과 그 후손이 중심이다. 2022년부터 2년 동안 세 차례 멕시코를 방문해 한인 2~5세 후손을 인터뷰하고 유카탄의 농장을 촬영했다. 48분짜리 4채널 영상 〈백년 여행기〉는 멕시코 디아스포라의 기억과 오늘날 한국에 사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겹쳐 '이동하는 존재'라는 리듬으로 엮는다. 함께 공개된 〈날의 벽〉은 설탕으로 쌓아 올린 대형 조각 벽으로, 노예무역의 산물인 설탕의 이중성을 드러내며 마체테(에네켄을 베던 칼)의 '날'과 벽돌의 '벽'을 겹치는 언어 유희를 품는다. 사운드 설치 〈상상곡〉은 초지향성 스피커로 관객 동선마다 다른 소리가 들리도록 설계되었다.

가장 최근 전시는 2025년 4~7월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린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다. 17년 만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으로, 미국 남부 흑인 노동자들의 블루스와 시간·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발효를 '피할 수 없었던 조건 위에서 피어난 감각'이라는 한 쌍으로 엮었다.


글을 마치며

정연두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태도가 선명하게 남는다. 그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워 왔다. 주유소 청년,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 댄스홀의 노인들,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에네켄 농장의 후손들. 이들의 이야기를 말할 때 그는 늘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과, 지금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연출이라는 것. 정연두에게 예술은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도, 현실을 대체하는 환영도 아니다. 두 층위를 동시에 드러내는 무대다.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2016), MoMA 소장, MMCA 올해의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같은 궤적은 화려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는 언제나 카메라 앞에 선 한 사람의 얼굴이다. 주인공이 아닌 줄 알았던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연두는 25년 넘게 셔터를 눌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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