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트레버 팽글런(Trevor Paglen)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트레버 팽글런(Trevor Paglen)

2013년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센터폴드에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의 광활한 부지, 조명 아래 주차장에 둘러싸인 거대한 박스형 건물. 미국 국가안보국(NSA) 본부였다. 스노든 폭로가 한창이던 시기, 대부분의 미국인조차 처음 본 장면이었다. 이 사진을 위해 한 예술가가 헬리콥터를 빌려 야간 비행을 감행했다. 그의 이름이 트레버 팽글런이다.

미술가이자 지리학 박사, 조사 저널리스트이자 엔지니어. 무엇보다 "감춰진 것을 시각화하는 사람"이다.


공군기지에서 자란 지리학자

팽글런은 1974년 메릴랜드 캠프 스프링스에서 태어나 미국 여러 공군기지를 떠돌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울타리 너머의 군 시설을 보며 자란 경험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할 주제를 일찌감치 심어두었다. 분명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없는 풍경들.

학력은 이례적이다. UC 버클리 학사, 시카고 예술대학(SAIC) 예술 석사(MFA), 그리고 UC 버클리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술가가 지리학 박사인 경우는 드물다. 팽글런에게 지리학은 지도 제작이 아니라 공간과 권력의 얽힘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의 예술은 이 질문을 시각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세 개의 지층

① 군사-감시의 풍경. 출발점은 미국 서부 사막이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비밀 군사 시설들이 숨어 있는 네바다와 유타. 팽글런은 천체망원경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없는' 시설을 촬영했다. 흐릿한 이미지는 한계지만 동시에 증언이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사진." 2010년 사진집 《Invisible: Covert Operations and Classified Landscapes》로 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다.

② 우주와 위성. 시선은 곧 하늘로 올라갔다. 군사 정찰 위성, NSA의 해저 광케이블, 기밀 우주비행체까지. 2012년 〈The Last Pictures〉 프로젝트에서 그는 인류 멸망 뒤에도 남을 이미지 100장을 선정해 EchoStar XVI 통신위성 외벽에 실어 정지궤도에 올려보냈다. 2018년에는 〈Orbital Reflector〉라는 30미터 반사 조각을 SpaceX 로켓에 실어 발사했다. 군사·상업 목적 없이 순전히 미학만을 위한, 거의 최초의 인공위성이었다.

③ 인공지능과 기계의 시선. 최근 10년의 화두. 이제 대부분의 이미지는 기계가 기계에게 보내는 데이터다. 2019년 그는 연구자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와 〈ImageNet Roulette〉를 공개했다. 사용자가 얼굴을 업로드하면 AI가 라벨을 붙여주는 이 작업은, AI 훈련 데이터가 얼마나 인종·성차별적 분류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폭로했다. 바이럴로 퍼졌고, 결국 ImageNet은 문제가 된 60만 장을 삭제해야 했다. 예술이 실제 인프라를 움직인 드문 사례다.


아름다움으로 공포를 전달하는 법

그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그의 무기는 이미지다. NSA 건물의 야경, 드론의 궤적, AI가 분류한 얼굴들—모두 섬뜩할 만큼 회화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아름다움이 공포를 전달한다. 그는 말한다. 자신의 일은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문화적 어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국과의 깊은 인연

팽글런은 한국 관객에게 낯설지 않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 참여, 같은 해 제1회 백남준 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 2019년 백남준 아트센터 한국 첫 개인전, 2022년 페이스 갤러리 서울 개인전,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AI 주제전(김아영 작가와 동반 전시)까지. 기술과 감시를 다루는 그의 작업이 백남준의 유산과 직접 이어진다는 인식은 한국 미술계에서 일찍부터 확고했다.


2026년 3월의 빅뉴스: LG Guggenheim Award 수상

2026년 3월 17일, 그의 이름이 다시 한 번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제4회 LG Guggenheim Award 2026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LG와 뉴욕 구겐하임이 공동 주관하는 이 상은 상금 10만 달러와 함께,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매년 주어진다. 직전 수상자는 2025년의 김아영 작가였다.

수상 소식이 주는 묘한 긴장이 있다.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거대 전자회사 LG가 후원하는 상을, 바로 그런 기술들이 만들어내는 감시 체제를 비판하는 작가가 수상한 것이다. 이런 모순적 긴장이 어쩌면 21세기 예술 후원의 가장 솔직한 풍경일지 모른다.

2026년 5월 18일, 팽글런은 뉴욕 구겐하임에서 〈The Lizard People Are Here!〉라는 강연-퍼포먼스를 연다. 음모론을 비튼 제목은 그의 최근 관심사—CIA 마인드컨트롤 실험, 심리작전, 무대 마술—를 향한다. 같은 달 그의 신간 **《How to See Like a Machine: Images After AI》**도 출간된다.


닫는 말

팽글런의 작업 앞에 서면 관람객은 종종 불편한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가 '본다'고 믿었던 세계는 실은 보이도록 허락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쓰는 기술이 우리를 관찰하는 방식과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는 방식 사이에는 엄청난 비대칭이 있다는 사실.

그는 이 비대칭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무엇이 보이지 않는지 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조금 다른 눈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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