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밥을 짓는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니자

 

갤러리에서 밥을 짓는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니자

1992년, 뉴욕 소호의 303 갤러리. 관람객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주친 건 흰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었다. 갤러리의 사무실 공간이 통째로 임시 주방으로 바뀌어 있었고, 태국 카레 냄새가 풍겨왔다. 한 태국 작가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방문객은 누구나 자리에 앉아 무료로 식사할 수 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Untitled (Free)〉. 그리고 이 요리사가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다.


국경 없는 성장기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196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국인 외교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태국인, 그는 에티오피아, 캐나다,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성장했다. 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 예술대학(Ontario College of Art)을 거쳐, 시카고 예술대학 부속 연구 프로그램과 뉴욕 휘트니 독립 연구 프로그램(Whitney Independent Study Program)에서 수학했다.

작가 자신은 작업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 시작점은 낯선 장소에서, 나 자신으로부터도 낯선 곳에서 내 정체성을 찾는 일이었다."

세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민자이자 디아스포라의 감각—그는 이것을 약점이 아니라 작업의 엔진으로 삼았다. 국경과 문화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권이다.


'관계 미학'이라는 이름의 혁명

1990년대 초 현대미술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프랑스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미술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가장 선명한 얼굴이 바로 티라바니자였다.

관계 미학의 핵심은 단순하다. 작품은 물건이 아니라 상황이다. 그림이 벽에 걸려 관람객의 시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직접 먹고, 앉고, 이야기하고, 요리하고, 떠나는 그 행위의 총체가 곧 작품이다. 작가는 무대 감독에 가깝고, 관객은 공연자이자 재료가 된다.

티라바니자는 한 가지 중요한 지점에서 부리오와 미묘하게 거리를 둔다. 그는 "관계"라는 말은 받아들이지만, "미학(aesthetics)"이라는 서구적 개념에는 유보적이다. 미학이 여전히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을 분리하는 서구적 이분법에 뿌리박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분리를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이 요리였다.


가장 유명한 요리들

〈Untitled (Pad Thai)〉, 1990 — 첫 번째 초대

뉴욕 폴라 앨런 갤러리(Paula Allen Gallery). 무명이던 29세의 태국 청년이 미술관 같은 공간에 냄비를 들고 들어가 팟타이를 볶았다. 방문객들은 예술이 아니라 음식을 기대하지 않고 왔다가, 낯선 태국 요리를 나눠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관람객들은 이것을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이 혼란이야말로 티라바니자가 의도한 것이었다.

〈Untitled (Free)〉, 1992 — 갤러리를 주방으로

앞서 소개한 작품. 소호의 303 갤러리 사무실을 통째로 주방으로 바꾸었다. 관람객은 공짜로 태국 카레를 먹을 수 있었고, 이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이후 여러 도시에서 〈Untitled (Free/Still)〉이라는 이름으로 재연되었으며, 관계 미학의 교과서적 사례로 미술사에 남았다.

이 두 작품이 급진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신기해서"가 아니다. 갤러리라는 배타적 공간의 구조 자체에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누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가? 여기서는 어떤 행위가 허용되는가? 왜 미술관에서 밥을 먹으면 안 되는가? 음식을 나누는 행위만큼 오래된 인간의 의례는 없다. 티라바니자는 이 가장 원초적인 공동체성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한국에서의 기억: 리움 Art Spectrum 2024

한국 관객에게도 그의 이름이 선명한 시기가 있었다. 2024년 가을, 리움미술관이 격년으로 개최하는 젊은 작가 발굴 전시 〈Art Spectrum 2024〉의 예술감독으로 티라바니자가 선임된 것이다. 전시는 2024년 9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열렸고, 그는 단순히 큐레이팅을 넘어 전시 공간 자체를 관계적 플랫폼으로 재구성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왜 미술관에 오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진 시간이었다.


2026년, 지금 세계는 그를 부르고 있다

올해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밀도 높은 해 중 하나다. 세 개의 주요 전시가 동시에 혹은 연달아 열린다.

🇸🇬 싱가포르 STPI — 〈Say Yes to Everything〉 (2026.3.7 ~ 5.9) 그의 작품 철학을 가장 집약한 제목. **"모든 것에 예스라고 말하라"**는 태도는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이자 방법론이다.

🇮🇹 밀라노 피렐리 행가비코카 — 〈The House That Jack Built〉 (2026.3.26 ~ 7.26) 최근 개막한 대규모 회고전. 큐레이터 루치아 아스페시(Lucia Aspesi)와 비센테 토돌리(Vicente Todolí)가 기획했으며, 30년 이상 이어진 작가의 작업을 특히 건축적·공간적 차원에서 재조명한다. 그에게 건축은 관계가 일어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산업 공간 행가비코카(구 피렐리 공장)에서 그의 작업을 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 베니스 비엔날레 2026 카타르관 — 〈untitled 2026 (a gathering of remarkable people)〉 (2026.5.9 개막) 가장 주목할 만한 소식. 티라바니자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카타르관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르디니 공원에 텐트 구조물을 설계해, 아랍 세계의 예술가·음악가·시인·요리사를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카타리-아메리칸 작가 소피아 알-마리아(Sophia Al-Maria)의 영상, 레바논 작가 타레크 아투이(Tarek Atoui)의 라이브 퍼포먼스, 쿠웨이트-푸에르토리코계 작가 알리아 파리드(Alia Farid)의 조각, 팔레스타인 셰프 파디 카탄(Fadi Kattan)의 중동 요리 프로그램이 함께한다.

음식을 나누는 것이 곧 정치이고, 한데 모이는 것이 곧 저항이라는 그의 오래된 명제가, 분열과 갈등이 고조된 2026년의 베니스에서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다.


글을 마치며: 예술은 먹고, 마시고, 함께 있는 일

티라바니자의 작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종종 당황한다. "이게 왜 예술인가?" 그러나 그의 작품 앞에서 한 그릇의 음식을 나눠 먹고 나면, 질문은 슬그머니 뒤집힌다. "왜 이것이 예술이 아니어야 하는가?"

벽에 걸린 그림이 사람을 침묵시키는 동안, 그의 작품은 사람을 대화하게 만든다. 차가운 화이트 큐브가 권위를 만드는 동안, 그의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은 경계를 녹인다. 어쩌면 예술의 가장 오래된 기능은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었을 것이다. 불 앞에서, 음식 앞에서.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그 오래된 기능을 현대미술관 안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의 전시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나눈 한 입의 팟타이는, 종종 가장 인상적인 전시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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