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래: 기계와 살 사이
이미래: 기계와 살 사이
이미래(1988년생)는 지금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조각가 중 한 명이다. 2024년 10월, 런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 그의 전시 《Open Wound》가 열렸다. 현대자동차와 테이트가 함께하는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의 아홉 번째 작가이자,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 처음 선정된 한국 작가다. 35미터 높이로 비어 있는 터바인 홀은 매년 단 한 명의 작가에게만 허락되는 자리이며, 루이즈 부르주아와 올라퍼 엘리아손, 카라 워커, 애니카 이 같은 이름들이 거쳐 간 공간이다.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불과 2년 만의 도약이었다.
재료: 산업과 신체의 교차점
이미래의 작업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의 재료 목록을 보는 것이다. 시멘트, 레진, 철, 석고, 비계(scaffolding), 실리콘 튜브, 그리고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펌프 모터. 여기에 정체 모를 점액질의 액체 — 대개 오일과 실리콘을 섞은 혼합물이나 색을 입힌 유액 — 가 더해진다. 목록의 절반은 건설 현장에서 오고, 나머지는 의료·공업 설비에서 온다. 그가 이 재료들을 다루는 방식은 조각가보다 장기 이식자 혹은 공장 설계자에 가깝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조소와 영상매체를 복수전공하고 2013년부터 독립적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는 줄곧 한 가지를 밀어붙였다. 조각의 정지(靜止)를 깨는 것. 그의 작업은 대부분 움직인다. 펌프가 액체를 밀어 올리고, 천이 떨리고, 사슬이 흔들린다. 정지한 덩어리가 아니라 순환하는 체계다. 관객은 조각 옆을 지날 때마다 액체가 막힌 관을 지나가는 불규칙한 숨소리 같은 것을 듣게 된다. 조각이 '보이는 것'에서 '들리고 냄새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계보: 에바 헤세 이후의 조각
이미래의 작업은 20세기 후반 여성 조각가 계보 안에서 자주 읽힌다. 고무와 라텍스로 신체의 피로와 무게를 조각으로 옮긴 에바 헤세(Eva Hesse), 거미·자궁·가구가 뒤섞인 사적인 괴물을 만들어낸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신체에 기계장치를 부착해 불안정한 움직임을 연출한 레베카 호른(Rebecca Horn), 스타킹과 모래로 신체의 긴장을 시각화한 센가 넨구디(Senga Nengudi). 이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의 몸'이라는 오래된 조각의 주제를 재료의 문제로 가져온 작가들이다.
이미래는 이 계보를 이으면서도 한 걸음 더 간다. 선배 세대가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대에 유기적 재료로 기계 중심의 세계에 저항했다면, 이미래는 산업이 이미 지나간 자리에서 작업한다. 공장의 동력계, 오일, 호스, 비계처럼 그 시대의 잔해가 된 사물들에 거꾸로 유기체의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조각에서 H. R. 기거(H. R. Giger) — 스위스의 바이오메카닉 거장이자 〈에일리언〉 디자이너 — 의 감각도 종종 언급된다. 2021–2022년 베를린 싱켈 파빌리온(Schinkel Pavillon)에서 기거와의 2인전이 열렸을 때, 두 세대의 그로테스크가 한 공간에서 공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주요 궤적
이미래가 자기 조형 언어를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작업은 2020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캐리어즈(Carriers)》였다. 호스 펌프로 작동하는 대형 키네틱 조각으로, 동물의 소화기관을 닮은 구조가 점액 물질을 빨아들이고 운반하고 다시 뱉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운반자들'이라는 제목처럼, 조각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옮기고 있었고, 그 무언가는 대체로 불쾌한 것이었다. 이후 해외 무대에서 증폭될 그의 문법이 여기서 거의 완성되었다.
2022년은 분수령이었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Endless House: Holes and Drips〉를 걸었고, 같은 해 프랑크푸르트 MMK에서 개인전 《Look, I'm a fountain of filth raving mad with love》를 열었다. 길고 도발적인 제목 — '나는 오물의 분수다, 사랑에 미쳐서' — 은 그 자체로 작가의 태도를 요약한다. 덴하그 시립미술관의 《As we laydying》, 미국의 제58회 카네기 인터내셔널, 그리고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영도의 폐공장 송강중공업 건물에 장소특정적 설치를 세웠다. 태풍으로 지붕과 벽 일부가 날아가 골조가 드러난 공장 안에 그는 '다공(多孔)의 껍질로 싸인 덩어리'를 쌓아 올렸다. 건물 자체의 뼈대가 작품의 일부가 된 드문 사례다.
2023년에는 뉴욕 뉴 뮤지엄의 개인전 《Black Sun》이 이어졌다. 이 무렵부터 비평가들은 이미래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보어(voer) 페티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대상을 통째로 삼켜 버림으로써 대상과의 거리 자체를 무화(無化)하려는 욕망,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대한 집착이다. 그의 조각이 관객을 '감상'시키지 않고 '흡수'하려 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오픈 운드〉 — 터바인 홀에서 벌어진 일
2024년 10월 8일부터 2025년 3월 16일까지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서 열린 《Mire Lee: Open Wound》는 이미래의 어휘가 가장 큰 공간에서 시험된 사례다. 테이트 모던은 본래 뱅크사이드 화력 발전소였다. 이미래는 그 건물의 산업사(史)를 작업의 전제로 삼았다. 터바인 홀 천장에 원래 설치되어 있던 이동식 크레인을 '발견된 오브제'처럼 전유한 뒤, 그 위에 7미터 길이의 산업용 동력 기계를 걸었다. 천장에서는 49개의 금속 사슬이 내려오고, 사슬에는 '피부(skin)'라 부르는 대형 천 조각들이 매달렸다.
전시의 핵심은 순환이었다. 천 조각들은 로비 중앙부에서 끈적한 액체에 젖었다가, 크레인을 따라 뒤쪽으로 이동해 건조되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걸렸다. 이 순환이 전시 기간 다섯 달 내내 반복되면서 공간은 유기적으로 변했다 — 10월에 본 풍경과 1월에 본 풍경이 달랐고, 전시장 자체가 숨 쉬고 분비하고 낡아가는 신체가 되었다. 정맥을 연상시키는 실리콘 튜브, 핑크빛으로 물든 액체, 축 늘어진 피부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거대한 장기 내부에 들어선 감각을 준다.
작가는 '오픈 운드(열린 상처)'라는 제목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예술가는 예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무력감이 닫히지 않는 상처처럼 계속 열려 있다는 것. 표면적으로는 공장, 장기, 체액, 기계음으로 가득한 전시였지만, 그 아래에 놓인 것은 예술가의 윤리적 무력감에 대한 고백이었다. 관객이 마주한 것은 기괴한 스펙터클인 동시에, 고통을 잊지 않고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감각에 대한 긴 명상이었다.
글을 마치며
이미래의 이력을 따라 적다 보면 한 가지 속도감이 남는다. 베니스, 카네기, 뉴 뮤지엄, 테이트. 그가 이 네 공간을 3년 사이에 통과한 궤적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드문 것이다. 그러나 속도보다 오래 남는 것은 그의 조각이 놓인 정확한 자리다. 이미래의 작업은 '한국적'이라거나 '여성적'이라는 꼬리표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다. 그는 신체와 기계의 경계라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조각의 가장 보편적인 질문 안에 자기 자리를 잡았다. 선배 세대가 산업 시대의 몸을 다뤘다면, 이미래는 산업이 떠난 자리의 몸을 다룬다. 움직이고 흘러내리고 새는 그의 기계-신체들은 지금 시대의 고통과 그 지속성을 가장 솔직한 재료로 번역한다.
열린 상처는 닫히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시간의 정확한 상태라면, 이미래의 조각은 그 시간을 기록하는 가장 기이하면서도 정직한 언어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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