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모토 히로시: 시간을 찍는 카메라

 

스기모토 히로시: 시간을 찍는 카메라

텅 빈 영화관의 스크린이 새하얗게 빛난다. 객석도, 장식도, 천장의 몰딩도 또렷한데 유독 스크린만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 Sugimoto Hiroshi)의 《극장(Theaters)》 연작이 포착한 것은 한 편의 영화 전체다. 상영이 시작되는 순간 대형 카메라의 셔터를 열고, 두 시간 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셔터를 닫는다. 24분의 1초씩 빠르게 이어지던 수십만 장의 프레임이 한 장의 인화지 위에 겹쳐지면, 남는 것은 의미를 잃은 빛, 그저 하얗게 번지는 시간이다. 이 단 한 컷의 이미지가 스기모토라는 작가의 방법론 전체를 압축한다. 그는 사진으로 시간 그 자체를 촬영한다.

스기모토 히로시(1948년 도쿄 출생)는 사진을 주축으로 조각, 설치, 건축, 연극 연출을 넘나드는 현대미술가다. 릿쿄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뒤 1970년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1974년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이미 도널드 저드, 댄 플래빈, 월터 드 마리아, 이사무 노구치, 백남준 등이 활동하던 소호의 미니멀리즘·개념미술 씬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고, 1980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은 이듬해 소나벤드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9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인전 이후 국제적 명성이 확고해졌고, 현재는 도쿄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박제된 자연을 다시 살려내다 — 《디오라마》

스기모토의 첫 번째 주요 연작은 1976년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시작된 《디오라마(Dioramas)》다. 박물관 전시실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박제 동물과 그려진 배경을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이 작업은, 어느 날 그가 문득 품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박제는 죽어 있고, 배경은 그림이다. 그런데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서 한쪽 눈을 감으면,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

그는 유리 반사와 주변 조명을 제거하고, 피사계 심도를 최대한 확보해 셔터를 눌렀다. 그 결과 박제된 북극곰이 다시 빙하 위를 걷고, 박제된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석고로 만든 네안데르탈인이 다시 불 앞에 앉는다. 가짜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장면을 사진이라는 매체가 또 한 번 '살아 있게' 만드는 이 역설 — 스기모토 작업의 윤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에게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 자체를 드러내는 장치다.


두 시간의 영화를 한 컷으로 — 《극장》

1978년에 시작된 《극장(Theaters)》 연작은 스기모토의 가장 상징적인 작업이다. 이스트빌리지의 싸구려 극장에 대형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 그는,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셔터를 개방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현상된 필름에는 텅 비어 환하게 빛나는 스크린과, 그 빛에 은은히 드러난 극장 내부가 함께 담겼다. 100분이든 120분이든, 한 편의 영화가 가진 모든 프레임이 서로를 덮고 지워 결국 '순수한 빛'이 된 것이다.

이 단 한 장의 사진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한쪽에는 건축물로서의 극장이 움직임 없이 고정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두 시간 분량의 시간이 압축되어 사라져 있다. 스기모토는 이후 드라이브인 극장, 유럽의 오페라하우스, 폐허가 된 영화관으로 범위를 넓혀 갔다. 그에게 사진은 "기억을 저장하는 시스템이자 일종의 타임머신"이며, 《극장》은 그 명제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한다.


인류 이전의 풍경을 향해 — 《해경》

1980년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해경(Seascapes)》은 스기모토의 철학이 가장 엄격한 형식에 도달한 연작이다.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세계 각지의 바다를 찾아가 수평선이 프레임 정중앙에 오도록 구도를 잡고, 하늘과 바다가 정확히 절반씩 나뉘도록 셔터를 연다. 아드리아해, 티레니아해, 카리브해, 동해, 흑해, 태평양. 수백 점의 흑백 사진이 동일한 구도, 동일한 비율 위에서 무한히 반복된다.

이 반복은 개념적이다. 스기모토는 이 풍경이 원시인류가 바라보았을 바다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형은 바뀌고 도시는 솟아올랐지만, 맑은 날의 수평선과 하늘은 수십만 년 전 인간의 의식이 처음 깨어나던 순간과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가 포착하는 것은 풍경 이전의 풍경, 문명 이전의 시간이다. 어떤 해경은 안개에 싸여 거의 회색빛 추상화처럼 보이고, 어떤 해경은 수면의 미세한 파동까지 기록한다. 프레임의 형식은 같지만 두 바다가 같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이 연작의 오랜 지속을 가능하게 한 역설이다.


초점 너머의 건축, 전류의 초상 — 《건축》과 《라이트닝 필드》

1997년부터 시작된 《건축(Architecture)》 연작에서 스기모토는 의도적으로 초점을 두 배의 무한대 지점에 둔다. 카메라의 벨로즈를 끝까지 밀어 낸 흐릿한 화면 위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윤곽이 부유한다. 크라이슬러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롱샹 성당, 퐁피두 센터가 안개 속 유령처럼 떠오른다. 그는 이 작업을 건축의 내구성 시험이라 부른다. 흐림을 견디고 남는 형태만이 건축의 본질이라는 것.

2006년부터 이어진 《라이트닝 필드(Lightning Fields)》는 카메라 자체를 떠난 사진이다. 40만 볼트 반 더 그래프 발전기로 필름에 직접 전기를 흘려 넣는 이 작업은, 윌리엄 폭스 탤벗의 칼로타이프 발명과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자기 실험을 동시에 호출한다. 필름 위로 가지를 뻗는 전류의 궤적은 고사리 화석 같기도, 핏줄 같기도, 번개 같기도 하다. 《개념적 형태(Conceptual Forms)》에서는 19세기의 수학 모델을 촬영하고, 직접 스테인리스 스틸로 같은 형태의 조각을 제작한다. 매체가 달라져도 질문은 하나다. 우리가 '형태'라 부르는 것은 결국 시간 위에 어떻게 떠 있는가.


사진에서 건축으로 — 《에노우라 측후소》

스기모토는 2009년 오다와라 미술재단을 설립하고, 20년 넘는 계획 끝에 2017년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에노우라에 《에노우라 측후소(江之浦測候所, Enoura Observatory)》를 개관했다. 하코네 산록과 사가미만을 품은 약 6만 제곱미터의 귤밭 부지 위에 갤러리, 노(能) 무대, 다실, 옥외 석조 원형극장, 무로마치 시대 양식을 복원한 문이 들어섰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방향이다. 여름 하지의 일출선을 따라 놓인 100미터의 갤러리, 겨울 동지의 일몰을 겨냥해 설계된 광학 유리의 무대. 그는 건축을 통해 해경의 수평선을 다시 한 번 공간화했다.

측후소라는 명칭은 의도적이다.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라 "의식의 기원을 관측하는 장소"다. 건축과 조경, 다도와 노극, 고고학 유물이 함께 놓여 일본이 잃어 가는 전통 건축 기법을 후대에 전승한다. 사진이 시간을 압축하는 장치였다면, 에노우라는 시간을 다시 펼쳐 놓는 장치다.


글을 마치며

스기모토 히로시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일관된 태도가 남는다. 그는 사물을 찍지 않는다. 사물 뒤에 흐르는 시간을 찍는다. 박제된 동물을 통해 진화의 시간을, 영화관의 빈 스크린을 통해 한 편의 영화가 소비한 시간을, 수평선 위의 빛을 통해 인류가 의식을 갖기 이전의 시간을.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한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시간의 틈을 향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사유이고, 정물이면서 동시에 풍경이며, 현재이면서 동시에 태고의 흔적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인전, 구겐하임 펠로십, 프래멘덜 아르 데 레트르 오피시에 훈장, 오다와라 미술재단 같은 궤적은 한 세대의 사진가가 도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는 여전히 수평선으로 양분된 단 한 장의 흑백 해경, 혹은 텅 빈 극장의 하얀 스크린이다. 사진이 시간을 멈추는 매체가 아니라 시간을 '드러내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 스기모토 히로시는 50년에 걸쳐 그 단 하나의 명제를 증명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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