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위계 없는 사진의 풍경

 

볼프강 틸만스: 위계 없는 사진의 풍경

빨래걸이에 길게 걸려 있는 옷가지. 햇빛 아래 빛나는 친구의 어깨선. 한밤의 클럽에서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린 손들. 비행기 창 너머 사선으로 솟구치는 콩코드. 책상 위에 놓인 사과 한 알과 그 옆의 컴퓨터 키보드. 한 전시장 안에 이 모든 사진이 동시에 걸려 있다. 어떤 것은 큰 인화지로, 어떤 것은 잡지에서 찢어 낸 페이지로, 어떤 것은 작은 엽서 크기로, 또 어떤 것은 그냥 투명 테이프로 벽에 붙어 있다. 액자도, 정해진 높이도, 일정한 동선도 없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전시장에서는 사진이 갤러리 안에 살림을 차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볼프강 틸만스(1968년 독일 렘샤이트 출생)는 영국 본머스 앤드 풀 미술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1990년대 초 베를린과 런던을 오가며 잡지 《i-D》에 친구들과 클럽 문화의 풍경을 발표했고, 그 과정에서 사진이 미술관에 걸리는 방식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2000년에는 사진가로서는 처음, 그리고 비영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터너 상을 받았다. 2017년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202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두려움 없이 보라(To look without fear)》라는 제목으로 그의 30여 년 작업을 한 자리에 펼쳤다. 음악, 출판, 정치적 캠페인까지 영역을 넓히며 활동을 이어 가는 중이다.


친구들을 찍는다는 일 — 1990년대 클럽 사진

틸만스가 카메라를 들이댄 첫 번째 대상은 친구들이었다. 베를린의 게이 클럽, 런던의 레이브 파티, 이불 속에서 막 눈을 뜬 룸메이트, 옷을 갈아입는 연인. 그는 이런 장면들을 잡지에 실었고, 곧바로 미술관 벽에도 그대로 옮겨 걸었다. 패션 사진과 가족 앨범, 다큐멘터리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자리에서 그는 90년대 청년 문화의 자화상을 만들어 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시선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카메라는 친구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았다. 친구는 끝까지 친구로 남았다.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서툰 모습 그대로. 게이로 살아가는 일, 클럽에서 보내는 밤, 동료들과 만드는 작은 공동체.. 그는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미술관에 걸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그의 사진을 통해 설명하지 않고도 보여 주었다.


비행기, 종이, 빛 — 추상으로의 확장

1997년 연작 《콩코드》는 런던 히드로 공항 근처에서 매일 콩코드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가까이서 잡은 거대한 동체, 멀리서 잡은 작은 점. 그는 한 시대의 기술적 자부심을 거의 추상에 가까운 형태로 분해했다. 2000년대 들어 그의 작업은 카메라 없는 사진(포토그램), 인화 과정에서의 광학적 사고를 활용한 추상 연작으로 확장된다. 〈프리슈빔머(Freischwimmer)〉 연작은 빛과 화학약품만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로, 사진이 반드시 무언가를 '찍는' 행위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단정한 화면 안에서 증명한다. 그에게 사진은 빛이 종이 위에 남기는 모든 흔적이다.


진실의 자리 — 〈트루스 스터디 센터(Truth Study Center)〉

2005년 시작된 이 연작은 낮은 나무 테이블 위에 신문 기사, 정치 팸플릿, 사진, 자신의 인쇄물을 함께 늘어놓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9·11 이후의 뉴스, 이라크 전쟁의 보도, 동성결혼 논쟁, 기후 위기 — 그가 모은 자료들은 동시대가 진실을 어떻게 만들고 다시 의심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2016년 브렉시트 국면에서는 직접 캠페인 포스터를 제작해 거리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에게 사진가의 작업은 작업실 안에 머물지 않는다. 한 장의 사진이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가, 그 옆에 무엇이 함께 놓이는가에 따라 같은 이미지의 의미는 매번 달라진다. 그는 그 차이를 진지하게 다룬다.


글을 마치며

틸만스의 전시를 한 번 본 사람은 그 뒤로 다른 사진전을 보면 어딘가 갑갑하게 느껴진다. 흰 매트, 가지런한 액자, 눈높이에 일정하게 걸린 작품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그 질서가 사실은 누군가 정해 놓은 위계였다는 사실을, 틸만스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는 친구의 얼굴이 천체 사진과 나란히 걸리고, 빨래걸이가 정치 포스터와 한 시야 안에 들어온다. 거창한 것과 사소한 것이 같은 무게로 놓일 수 있다고 믿는 일, 그것이 결국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잡지 한 페이지에 실리든 미술관 벽에 걸리든, 그의 사진은 늘 같은 자세로 거기에 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길지를 미리 정해 두지 않은 채로, 눈앞에 있는 것을 그저 눈앞에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자세. 30년이 흘러도 그의 사진이 식지 않는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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