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수직선 — 바넷 뉴먼(Barnett Newman), 캔버스에 숭고를 그은 사람

 

단 하나의 수직선 — 바넷 뉴먼, 캔버스에 숭고를 그은 사람

들어가며

거대한 캔버스. 적갈색 한 색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가르는 단 하나의 수직선. 그것뿐이다. 다른 형태도, 이미지도, 붓질도 없다. 단 한 줄.

이게 뭐냐고 물으면, 화가는 그것을 '지퍼(zip)' 라고 불렀다. 옷에 달린 그 지퍼처럼, 거대한 색면을 가로지르며 공간을 가르고 동시에 잇는 한 줄. 이 한 줄이 1948년 1월 29일, 화가의 43번째 생일에 그어졌고, 그것이 미국 미술의 한 시대를 열었다.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 폴록과 로스코와 함께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세 번째 정점. 그러나 폴록의 격렬함과도, 로스코의 안개 같은 색면과도 다른 자리에 그가 섰다. 단호한 경계의 하드 에지. 폴란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 철학을 공부한 화가, 평생 *숭고(sublime)*라는 한 가지 주제에 매달린 사람.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가 만난 폴록(동의 미학)과 로스코(정의 미학) 사이에서, 뉴먼은 다시 다른 자리에 선다. 선 하나가 가진 형이상학적 무게를 평생 탐구한 사람. 그가 그은 한 줄이 후일 미니멀리즘 전체의 출발점이 된다 — 도널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 그리고 우리 시리즈에서 만난 엘즈워스 켈리가 모두 뉴먼의 그림자 아래에서 출발했다.


뉴욕의 폴란드 유대인 소년

1905년 1월 29일, 바넷 뉴먼은 뉴욕 맨해튼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같은 시리즈의 로스코(라트비아 출신 유대인, 1903년생)와 거의 동시대, 같은 동유럽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일원. 두 사람은 평생 친구였고 라이벌이었다.

1923년, 18세의 뉴먼은 뉴욕 시립대학(City College of New York) 에 입학했다. 그가 공부한 전공은 철학(philosophy). 미술사가 아니라 철학. 이것이 그의 평생을 결정짓는다. 다른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느낌과 즉흥에서 출발했다면, 뉴먼은 처음부터 개념과 사유에서 출발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철학적 질문에 대한 시각적 답변이었다.


1930~40년대 — 작가가 되기 위한 긴 우회로

대학을 마친 후 뉴먼은 한참 동안 화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아버지의 의류 제조 회사에서 일했다. 1934년에는 그로버 클리블랜드 고등학교에서 대체 교사로 일했다(여기서 평생의 동반자 애나리 그린하우스를 만나 1936년 결혼). 흥미로운 사실 — 뉴먼은 1933년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다. 무명 후보로. 정치, 비평, 교육 — 그는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그림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1930년대부터 그림은 그렸지만 — 그는 그것들을 모두 파괴했다. 자신의 초기 작업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자기 손으로 폐기했다. 1944년이 되어서야 그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시작한다. 39세였다. 폴록(35세에 드립 페인팅 발명)이나 로스코(45세에 색면화 시작)에 비해서도 늦은 출발이었다.

이 시기 그는 화가보다 비평가로 더 알려져 있었다. 1948년에 그가 쓴 에세이 〈숭고는 지금 도래했다(The Sublime Is Now)〉 — 이 짧은 글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선언 중 하나가 된다. "유럽 미술의 질곡에서 자유로운 미국 화가들만이 숭고에 도달할 수 있다" 는 그의 주장.


1948년 1월 29일 — 〈Onement I〉의 탄생

뉴먼의 인생을 바꾼 한 작품이 있다. 〈Onement I〉(1948). 그가 43번째 생일에 완성한 작품. 적갈색 캔버스 위에 카드뮴 레드 라이트로 그어진 단 하나의 수직선. 작은 크기(69 × 41cm)의 작품이지만, 이것이 그의 평생을 결정짓는다.

처음 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 그는 "완성" 이라는 감각을 갖지 못했다. 그저 캔버스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빨간 페인트를 칠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테이프를 떼지 않은 채 8개월간 작업실에 그대로 두었다. 매일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천천히 깨달았다. "이것이 완성된 그림이다." 마스킹 테이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지퍼(zip)*가 된 것이다.

그가 후일 회고한 말 — "이 그림이 내게 깨우쳐 준 것은, 내가 처음으로 내 자신이 행한 것과 맞닥뜨렸다는 사실이었다." 〈Onement〉라는 제목은 "하나임(at-one-ment)" + 속죄(atonement) 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분리된 것을 하나로 만드는 행위. 동시에 유대교의 욤 키푸르(속죄의 날) 에 대한 암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 유대인 화가의 묵상이 그 한 줄 안에 있었다.


지퍼(Zip) — 뉴먼의 평생 화두

이후 22년간 뉴먼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지퍼를 그었다. 거대한 단색 캔버스를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수직선. 어떤 그림은 한 줄, 어떤 그림은 여러 줄. 어떤 줄은 두껍고, 어떤 줄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어떤 줄은 검고, 어떤 줄은 흰색이고, 어떤 줄은 거의 보이지 않는 색이다.

뉴먼이 지퍼에 부여한 의미들 —

  • 공간의 분할이자 통합 — 지퍼는 색면을 둘로 나누지만 동시에 그 둘을 잇는다
  • 창세기의 빛"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그어진 빛의 선
  • 구약의 불기둥 —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불기둥
  • 인간 자신 — 거대한 우주(색면) 한가운데 똑바로 서 있는 한 인간의 형상
  • 핵폭발의 섬광 — 미술사가 에이프릴 킹슬리는 그렇게 해석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그림자

가장 중요한 사실 — 뉴먼의 지퍼는 그저 한 줄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를 둘로 가르는 행위 자체, 인간이 무한 앞에 서서 "여기, 내가 있다" 라고 선언하는 그 자리였다.


1949년 — 오하이오 인디언 무덤에서의 체험

뉴먼이 거대한 규모에 매달리게 된 결정적 사건이 있다. 1949년 오하이오 인디언 무덤 방문. 거대한 고대 인디언 매장 둔덕(burial mound) 한가운데 그가 섰을 때, 그는 어떤 형이상학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네가 느끼는 그 장소를 바라보면서, 나는 여기 있다. 여기에. 그리고 저 너머에는 혼돈, 자연, 강, 풍경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나는 관람자를 현존하게 만드는 관념(Idea)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깨달음 이후 그의 캔버스는 거대해졌다. 관람객이 그 앞에 섰을 때, 자기 자신과 캔버스만의 대면을 강제하는 크기. 형태도 이미지도 없는 거대한 색면 앞에서, 관람객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의 현존을 의식하게 된다. 그것이 뉴먼이 의도한 효과였다.


〈Vir Heroicus Sublimis〉(1950~51) — 영웅적이고 숭고한

뉴먼의 가장 거대한 대표작. 〈Vir Heroicus Sublimis(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 라틴어 제목. 2.42m × 5.41m의 거대한 빨간 캔버스. 그 위에 수직선 다섯 줄이 그어져 있다.

이 그림 앞에 서 있어 본 사람은 안다 — 화면이 너무 커서 시야 전체를 빨강이 가득 채운다. 어디에서 그것이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마치 빨간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경험. 그리고 그 거대한 빨강 한가운데서 다섯 줄의 지퍼가 우리 자신의 수직성을 환기시킨다.

이 작품 옆에 뉴먼은 안내문을 직접 써 붙였다. "여기 있는 그림은 가까이서 봐야 합니다." 멀리서 형태로 보지 말고, 가까이 다가와 그 안에 들어와 있어라. 그것이 그의 작품 감상법이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와의 어색한 관계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는 폴록을 즉시 알아봤지만, 뉴먼은 한참 늦게 인정했다. "뉴먼은 그의 생애 마지막 무렵에야 예술가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고 그린버그는 후일 평했다.

이유가 있었다. 그린버그가 추구한 형식주의 모더니즘 — 회화의 평면성과 비재현성 — 의 관점에서, 뉴먼의 그림은 너무 단순해 보였다. 그저 색면 한 칸과 줄 한 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린버그는 깨달았다. 뉴먼이 도달한 자리가 사실은 그가 추구한 모더니즘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는 것을. 결국 뉴먼은 폴록·로스코와 함께 미국 추상회화의 세 정점으로 인정받게 된다.


부러진 오벨리스크 — 1963~67년

뉴먼은 회화만 그린 것이 아니다. 그가 만든 가장 유명한 조각이 있다. 〈Broken Obelisk(부러진 오벨리스크)〉(1963~67). 거대한 강철 조각. 피라미드 위에 거꾸로 선 오벨리스크가 그 정점에서 부러진 형태.

이 조각의 한 카피는 휴스턴 로스코 채플 앞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헌사가 새겨져 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위하여(For Martin Luther King Jr.)". 1968년 4월 4일 암살된 인권 운동가에게 바친 것이다. 부러진 오벨리스크 — 폭력에 의해 끊어진 한 사람의 삶, 그러나 그것이 거꾸로 선 채로 피라미드 위에 균형을 잡고 있다. 그 자체가 정의의 시각화였다.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뉴먼이 1960년대 후반에 그린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것.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는가?(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1966~70). 4점의 시리즈. 각 작품은 거대한 단색(빨강 또는 다른 한 색)으로 화면을 채우고 가장자리에 다른 두 색의 좁은 띠를 더한 구성.

제목은 미국 영화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1966)에서 차용한 것. 그러나 뉴먼이 진짜 묻고 있던 것은 — 추상회화에서 원색 사용에 대한 두려움. 빨강·노랑·파랑은 너무 강하고 진부해 진지한 추상화가들이 피해온 색이었다. 뉴먼은 정면으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시리즈에는 비극적 사건이 있다.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II〉(1967~68)이 1986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한 정신질환자에게 칼로 그어진 사건. 거대한 빨강 캔버스에 한 인간이 분노로 흠집을 낸 것. 미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미술품 훼손 사건 중 하나. 후일 복원되었지만 결코 원래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70년 7월 4일 — 미국 독립기념일에 죽다

1970년 7월 4일, 뉴먼은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5세. 미국 독립기념일에 죽은 가장 미국적인 화가. 같은 해 2월 25일에는 로스코가 자살했다. 추상표현주의의 두 거장이 같은 해에 사라진 것이다.

그가 죽은 후 9년이 지난 1979년, 부인 애나리는 바넷 뉴먼 재단(Barnett Newman Foundation) 을 설립했다. 그의 작품과 유산을 영구 관리하는 재단.


시장이 말하는 뉴먼 — 사상 최고가 추상화

생전에는 폴록·로스코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뉴먼이지만, 사후 그의 작품 가격은 폭발적으로 올랐다.

  • 2014년 5월 〈Black Fire I〉(1961) — 크리스티 경매 8,416만 달러(약 910억 원). 추상화 사상 최고가 기록(당시).
  • 2014년 5월 〈Onement VI〉(1953) — 4,380만 달러
  • 〈Anna's Light〉(1968) — 1억 500만 달러 사적 거래

검은색과 연노랑 화면에 검은 수직선 단 하나로 이루어진 〈Black Fire I〉이 추상화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 뉴먼의 평생 신념이 결국 시장에서도 입증되었다는 사실이다. 단 한 줄이 가진 무게가 어떤 화려한 추상보다 더 비싸다.


추상표현주의의 세 정점 — 폴록, 로스코, 뉴먼

같은 시대 같은 뉴욕의 세 거장을 정리하면 

세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해서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모두 한 가지를 공유했다 — 유럽이 600년간 지배한 미술의 중심을 미국 뉴욕으로 옮기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해냈다.


후대에 끼친 영향 — 미니멀리즘의 출발점

뉴먼의 가장 큰 유산은 — 그가 직접 한 작업이 아니라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에 있다.

폴록의 표현주의 격렬함과 정반대로, 뉴먼은 단호한 경계, 평면, 단순함을 보여줬다. 이것이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출발점이 된다.

  • 도널드 저드 — 우리 시리즈에서 만난 미니멀리즘의 거장. 뉴먼을 결정적 영향으로 인정
  • 프랭크 스텔라"본 그대로가 본 그대로다" 의 미학
  • 엘즈워스 켈리 — 우리 시리즈의 하드 에지 거장
  • 로버트 라우셴버그, 재스퍼 존스 — 다음 세대의 시작점

폴록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폭발적 정점이었다면, 뉴먼은 그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었다. 미술사의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그 결정적 순간에 뉴먼의 한 줄이 있었다.


한국에서 만나는 뉴먼

  •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 뉴먼의 직접 작품은 없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한국 단색화·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자료 소개
  • 2025년 노원문화재단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등 기획전에서 그의 작품 인쇄본·드로잉 등이 함께 소개됨
  • 진품을 보려면 MoMA(뉴욕), 워싱턴 국립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을 방문해야 한다.

마치며 — 한 줄이 가진 무게

뉴먼의 작품 앞에 처음 서면 누구나 묻는다. "이게 정말 미술인가? 그저 색 한 칸과 줄 한 줄?" 그러나 그의 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거대한 빨강 앞에 서서 자신의 작은 신체를 의식할 때, 그 빨강 가운데를 가르는 한 줄이 자신의 척추와 평행하게 서 있을 때, 사람들은 무언가를 느낀다. 뉴먼이 평생 *숭고(sublime)*라 부른 그것을.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가 만난 작가들 중 — 김환기의 점화 앞에서 우주적 그리움을, 로스코의 색면 앞에서 비극적 감정을, 뉴먼의 지퍼 앞에서 인간의 수직적 현존을 느낀다. 이 셋은 같은 시대에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자리에 도달한 거장들이다. 그들은 서로 만난 적 없지만 같은 진실을 향해 갔다.

다음에 뉴먼의 〈Vir Heroicus Sublimis〉 같은 작품 앞에 설 일이 있다면, 멀리서 보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 보시길. 그 빨강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자리, 그리고 그 가운데를 가르는 한 줄이 마치 자신의 몸과 평행하게 서 있는 자리. 거기서 뉴먼이 평생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가 천천히 떠오를 것이다. 한 사람이 거대한 우주 앞에 서 있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의 시각화 — 그것이 그의 미술이었다.


"미국 화가들의 새로운 세대가 한 가지 위대한 일을 해냈다. 그들은 마침내 인간 자신이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자리에 도달했다."
— Barnett Newman, 〈The Sublime Is Now〉, 1948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문경원 & 전준호: 미지에서 온 질문들

색이 우는 곳 —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