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am! 만화가 미술이 된 순간 —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점들
Whaam! 만화가 미술이 된 순간 —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점들
들어가며
전투기 한 대가 미사일을 쏘고, 다른 한 대는 폭발한다. 화면 가득 빨강과 노랑의 폭발. 굵은 검은 윤곽선, 큼직한 글씨 — "WHAAM!" 만화책에서 막 오려낸 듯한 이 장면이 캔버스 위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1.7m × 4.0m의 거대한 회화였다. 1963년의 일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 팝아트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 만화책 한 컷을 그대로 확대해 캔버스 위에 옮긴 그의 작업은 1960년대 뉴욕 미술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게 미술인가, 만화인가?"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만화가 아니다. 만화처럼 보이지만 만화가 아닌, 만화의 시각 언어를 분석한 회화다.
미키 마우스와의 도전 — 화가가 된 결정적 순간
1923년 10월 27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미술학 석사를 받고 10년 가까이 가르치며 추상표현주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다. 1960년 럿거스 대학 동료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의 영향으로 팝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결정적 전환점은 의외의 사건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아들에게 미키 마우스 그림을 그려주는데 아들이 만화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는 저렇게 잘 못 그릴걸요?" 그 한 마디가 38세의 화가를 자극했다. 그렇게 1961년 〈Look Mickey〉 가 탄생한다 —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이 낚시를 하는 장면, 말풍선과 함께.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61년 레오 카스텔리(재스퍼 존스를 발굴한 그 갤러리스트)가 그를 찾아왔다. 1962년 카스텔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작품들은 개막 전에 모두 팔렸다.
벤데이 점(Benday Dot) — 기계의 손
리히텐슈타인의 트레이드마크는 벤데이 점이다. 만화책이나 신문 인쇄에 사용되던 망점 — 자세히 보면 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색면. 그는 이 인쇄 기법을 캔버스로 옮겨왔다. 구멍이 뚫린 금속판을 캔버스 위에 대고 물감을 통과시켜 점을 찍었다. 손이 아니라 거의 기계가 만드는 점.
이것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잭슨 폴록이 자기 무의식을 캔버스에 흩뿌렸다면, 리히텐슈타인은 정반대로 갔다. 작가의 손, 감정, 개성을 모두 지웠다. 그가 한 가장 유명한 말 — "내 작품이 가능한 한 기계가 만든 것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워홀의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 그가 서 있었다.
대표작들
〈Whaam!〉(1963) — 전쟁의 만화
가장 유명한 작품. 1962년 만화책 〈All-American Men of War〉 86호의 한 장면을 가져와 거대한 이면화로 확대했다. 원본의 폭격기는 3대였지만 그는 한 대로 단순화했다. 전쟁의 끔찍함을 만화는 "WHAAM!" 한 마디로 처리한다. 그가 보여준 것은 대중매체가 죽음을 어떻게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만드는가였다.
〈Drowning Girl〉(1963) — 익사하는 여자
DC 코믹스의 〈Secret Hearts〉 83호에서 가져온 한 장면. 여자가 물에 빠져가며 생각한다. "신경 쓰지 마! 내가 가라앉는 한이 있어도 브래드의 도움은 받지 않을 거야!" 1960년대 로맨스 만화의 과장된 정서가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더욱 우스꽝스러워진다. 사랑인지 익살인지 모를 미묘한 자리.
〈Hopeless〉(1963), 〈Oh, Jeff... I Love You, Too... But...〉(1964)
울고 있는 금발 여인의 클로즈업, 말풍선 속의 진부한 대사. 1960년대 미국 여성성의 클리셰가 거기 박제되어 있다.
〈Masterpiece〉(1962) — 그의 최고가 작품
화가의 작업실에서 한 여자가 "왜, 브래드, 달링, 이 그림은 걸작이야! 곧 뉴욕의 모든 예술가들이 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거야!" 라고 말한다. 2017년 1억 6,500만 달러에 판매되어 그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림 안의 예언이 그림 밖에서 실현된 셈이다.
한국과의 인연 — '행복한 눈물'
한국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미술 외적인 이유로도 유명하다. 〈Happy Tears(행복한 눈물)〉 — 200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715만 달러에 낙찰된 이 작품이 삼성 X파일 사건과 연루되며 "비싼 현대 미술 작품" 의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에게 "눈물 흘리는 만화 여자" 는 한동안 사회적 논쟁의 상징이었다.
작품 자체는 사실 평범한 그의 로맨스 만화 시리즈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작품이 가진 사회문화적 의미는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강력해졌다. 미술이 사회와 만나는 방식의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다.
마치며 — 워홀의 그림자, 그러나 다른 길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은 같은 시대를, 같은 갤러리(카스텔리)를, 같은 분야(팝아트)를 공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
워홀이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는 작업을 했다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 한 컷을 손으로 다시 그리는 작업을 했다. 워홀의 작품에는 매스미디어 자체의 거친 표면이 들어왔다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매스미디어의 시각 어휘를 분석한 다음 정밀하게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워홀이 더 직관적·즉흥적이었다면, 리히텐슈타인은 더 분석적·구조적이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 워홀이 만화를 그리던 1961년경, 리히텐슈타인의 작업을 본 워홀은 "나는 이 길에서 그의 아류가 되겠구나" 판단하고 만화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캠벨 수프로 향한 것이다. 두 거장의 영토가 그렇게 갈라졌다.
다음에 만화를 볼 일이 있다면, 그 과장된 표정과 폭발음, 말풍선의 클리셰들이 사실은 얼마나 정교한 시각 언어인지 한 번 들여다보시길. 리히텐슈타인이 평생 매혹된 그것이 거기 있다.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
— Roy Licht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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