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마골레스(Teresa Margolles): 살인 현장에서 미술관까지

 

테레사 마골레스: 살인 현장에서 미술관까지

전시장 한가운데 텅 빈 공간이 놓여 있다. 가구도, 조각도, 영상도 없다. 다만 바닥이 젖어 있다. 한 남자가 양동이와 대걸레를 들고 들어와 천천히 그 바닥을 닦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안내문에는 한 줄이 적혀 있다. "이 물은 멕시코의 영안실에서 살해된 사람의 시신을 닦은 뒤 모은 물입니다." 관객은 잠시 멈춰 선다. 발 아래 젖은 바닥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다시 가늠해 본다. 미술관에 들어와 무언가를 보는 일이 보통 어떤 의미였는가, 그 의미가 갑자기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테레사 마골레스(Teresa Margolles)의 〈씻기(Limpieza)〉, 죽은 자의 흔적을 미술관 바닥으로 옮겨 놓은 이 단순한 동작은 그녀의 작업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준다. 그녀는 죽음을 재현하지 않는다. 죽음의 흔적을 직접 가져온다.

테레사 마골레스(1963년 멕시코 쿨리아칸 출생)는 시날로아 주의 한 도시에서 자랐다. 시날로아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린 지역 중 하나다. 그녀가 자란 풍경은 매일의 뉴스 한 칸을 채우는 살해 사건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들, 빈 자리만 남은 가족들의 일상이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AM)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법의학 학위를 따로 취득해 영안실에서 일했다. 1990년대 초 그녀는 동료 작가들과 함께 〈SEMEFO〉라는 그룹을 결성했는데, 이는 멕시코 영안실(Servicio Médico Forense)의 약자다. 그룹의 작업은 시신, 부검의 흔적, 죽음의 사물을 직접 미술관으로 가져오는 일에 집중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멕시코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고, 2012년 프린스 클라우스 상을 받았다. 그녀의 작업은 보기 편한 자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보기 편한 자리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빌려 한 번 일으켜 보려는 일에 가깝다.


시신을 닦은 물로 — 〈우리에 관해 너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멕시코관에서 마골레스는 베니스의 한 16세기 궁전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했다. 우아한 대리석 바닥과 프레스코 벽화가 남은 그 공간을 매일 한 사람이 들어와 대걸레로 닦았다. 사용된 물은 멕시코에서 마약 전쟁으로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을 닦은 뒤 보관해 가져온 것이었다. 작가는 그 물에 어떠한 처리도 하지 않았다. 다만 베니스로 옮겨 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손길로 바닥을 닦게 했다. 작품의 제목은 〈우리에 관해 너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De qué otra cosa podríamos hablar?)〉. 다른 무엇에 관해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베니스의 가장 화려한 미술 행사 한가운데서 그녀는 멕시코의 가장 외면받는 죽음을 한 동이의 물로 옮겨 놓았다. 관객은 그 바닥 위를 걸을 수도 있고, 걷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더 이상 무게가 없는 것이 아니다.


거리의 흔적을 벽으로 — 〈피의 흔적〉 연작

마골레스의 또 다른 반복적인 작업 형식은 살해 현장의 흔적을 천이나 벽돌, 콘크리트로 옮겨 오는 일이다. 그녀는 멕시코 북부의 거리에서 살인이 일어난 자리를 찾아간다. 이미 시신은 옮겨졌고, 경찰의 노란 테이프도 걷혔다. 다만 바닥에 피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녀는 그 자리에 흰 천을 깔고 핏자국을 그대로 옮겨 묻혔다. 그 천은 미술관으로 옮겨져 깨끗한 흰 벽에 걸린다. 어떤 작품은 그 자리의 흙과 시멘트 조각을 떠와 미술관 안에서 다시 벽돌로 만들어 쌓아 올린다. 그녀가 옮기는 것은 사진도, 영상도, 기록도 아니다. 그녀가 옮기는 것은 그 자리에 실제로 있던 물질 그 자체다. 미술관에 걸린 흰 천 한 장 앞에 서면, 우리는 그 천이 어디서 왔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떠올림이 그녀가 만들고자 한 가장 단순한 사건이다.


비누, 물방울, 침묵 — 시신과 함께 만드는 사물

2000년대 중반 마골레스는 일련의 사물 작업을 발표했다. 영안실에서 시신을 씻은 물에 라드(돼지기름)와 알칼리를 섞어 만든 비누, 같은 물로 만든 콘크리트 벽돌, 같은 물을 천천히 떨어뜨리는 라디에이터. 어떤 전시에서 관객은 손을 씻으라는 안내를 받고 그 비누에 손을 댔다. 또 다른 전시에서는 라디에이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공간을 천천히 식히는 가운데, 관객은 그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셨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작업이 도발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녀가 만들고자 한 것은, 한 사회가 이미 매일 들이마시고 있는 죽음의 공기를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한 번 의식적으로 마셔 보게 하는 일이었다. 멕시코의 거리에서 살해된 사람의 흔적과 미술관에 들어선 사람의 호흡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평소 믿는 것만큼 멀지 않다.


글을 마치며

마골레스의 작업은 거의 모든 곳에서 강한 거부감을 만난다. 미술관 큐레이터들은 그녀의 작업을 설치하기 위해 까다로운 위생 절차와 법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업이 죽은 자의 존엄을 침해한다고 비판해 왔다. 작가 자신도 그 비판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한 가지 사실 위에 서 있다. 죽은 자의 존엄이 정말로 침해되는 자리는 미술관이 아니라, 그 죽음이 매일 일어나고 매일 잊히는 거리라는 사실. 그녀가 미술관으로 옮겨 오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매일 일어나는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일상이다. 그 일상이 잠시 흔들리는 자리, 발 아래 바닥이 젖어 있는 자리, 흰 천 위의 흔적 앞에 서는 자리에서 그녀의 작업은 비로소 완성된다. 미술이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거친 응답이 그녀의 작업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응답은 보기에 편안하지 않다. 작가가 처음부터 편안한 자리를 만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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