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네샤트(Shirin Neshat): 시구가 새겨진 얼굴
시린 네샤트: 시구가 새겨진 얼굴
흑백 사진 한 장이 있다. 한 여자의 얼굴이 정면을 응시한다. 머리는 검은 차도르로 감싸여 있고, 노출된 얼굴 — 이마와 눈가, 콧등, 입술 — 은 빼곡한 페르시아어 문장으로 덮여 있다. 글씨는 얼굴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며, 눈동자 가까이에서는 작은 글자로 응축되었다가 광대뼈의 평평한 면에서는 다시 펼쳐진다.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의 〈알라의 여인들(Women of Allah)〉 연작은 그 한 장면 안에 한 사회의 모든 모순 — 종교, 여성, 폭력, 시(詩) — 을 응축해 놓는다. 우리는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끝내 그 얼굴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한마디로 정리하지 못한다. 그것이 작가가 정확히 의도한 자리다.
시린 네샤트(1957년 이란 카즈빈 출생)는 의사 가정에서 태어나 자유롭고 세속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17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중인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났다. 그녀가 떠나 온 나라는 그 혁명 이후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었다. 1990년 처음 이란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알던 풍경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 일상에 깊이 들어온 종교적 규율,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굳건한 일상. 작가는 그 풍경을 비난하지도, 미화하지도 않기로 했다. 다만 그 풍경 한가운데에 자기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기 자신이 떠나기 전과 떠나 온 후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보기로 했다. 그녀의 모든 작업은 그 거리에서 시작된다.
얼굴 위에 적힌 시 — 〈알라의 여인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제작된 이 사진 연작은 그녀의 이름을 국제 무대에 알린 작업이다. 차도르를 두른 여성, 권총, 그리고 페르시아어 시구. 세 가지 요소가 모든 사진에 한꺼번에 등장한다. 얼굴 위에 손으로 적힌 글은 이란의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타히레, 사아르 사파리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신앙, 사랑, 순교, 자유에 대한 시구가 차도르의 검은 면과 노출된 피부 사이를 가로지른다. 글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얼굴이 글을 받아 안는다. 권총은 위협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자기방어의 상징이다. 작가는 이 사진을 통해 어떤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한다. 차도르 안의 여성은 우리가 외부에서 상상한 것처럼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그 안에는 신앙도, 시도, 분노도, 사랑도 동시에 들어 있다.
두 화면이 마주 보다 — 〈격동(Turbulent)〉
1998년 작 영상 설치 〈격동〉은 두 개의 스크린이 서로 마주 보는 방식으로 설치된다. 한쪽 스크린에서는 한 남자 가수가 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페르시아 고전 시를 부른다. 객석은 전부 남성으로 가득 차 있고, 노래가 끝나면 박수가 터진다. 관객은 몸을 돌려 반대쪽 스크린을 마주한다. 그쪽에서는 한 여자 가수가 텅 빈 객석을 마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노래는 어떤 정해진 가사도, 정해진 멜로디도 없다. 거친 발성과 절규, 호흡과 침묵이 뒤섞인 즉흥적인 소리다. 이란에서 여성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단독으로 노래하는 일은 혁명 이후 금지되었다. 금지된 자리에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형식도 갖지 못한 채, 다만 소리 그 자체로 객석의 빈 의자들을 향해 쏟아진다. 두 스크린 사이에 선 관객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 분리된 자리가 작가가 마련한 정확한 자리다.
침묵 속의 여자들 — 〈여자들 없는 남자들〉
2009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장편 영화 〈여자들 없는 남자들(Women Without Men)〉은 1953년 이란 쿠데타 직전 며칠을 배경으로 네 명의 여성을 따라간다. 강제 결혼을 피해 도망친 여자, 거리로 나온 정치 활동가, 매춘부, 그리고 죽음을 선택했다가 다시 살아난 여자. 네 사람은 결국 도시 외곽의 한 정원에서 만난다. 정원은 꿈처럼 비현실적인 장소로, 그곳에서만 그녀들은 잠시 자기 자신으로 머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정치적 사건은 늘 화면 바깥에서 진행되고, 카메라는 그 사건이 한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흔드는가에 머문다. 네샤트의 시선은 늘 거대한 역사의 가장자리, 그 역사가 한 여성의 손끝과 발끝에 닿는 가장 작은 자리에 머문다. 그 작은 자리에서 가장 큰 폭력이 보이고, 가장 깊은 슬픔이 보인다.
글을 마치며
네샤트는 1996년 이후 다시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작업이 이란 정부로부터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망명한 작가의 자리에서 자기 나라를 한 번 더 응시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흑백의 화면, 페르시아어 시, 차도르를 두른 여성, 음악, 침묵. 그녀의 재료는 3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란이라는 한 나라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이, 그 나라를 어떻게 계속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다룬다. 그녀의 사진 속 여성들이 정면을 응시할 때, 그 시선은 우리에게도 닿는다. 그 시선 앞에서 우리는 잠시, 우리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한 나라의 일상을 우리 자신의 일상처럼 떠올리게 된다. 미술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녀의 작업은 가장 단정한 형식으로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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