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지(Sarah Sze): 일상의 파편으로 짓는 우주

 

사라 지: 일상의 파편으로 짓는 우주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천장에서 흘러내린 듯, 바닥에서 솟아오른 듯, 어떤 것은 위로 어떤 것은 옆으로 뻗어 가는 거대한 구조물.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형체는 우리가 매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면봉, 종이컵, 클립, 잉크가 마른 펜, 한쪽 면만 잘려 나간 잡지 페이지, 작은 LED 전구, 끊어진 사다리 조각, 화분에서 꺼낸 흙 한 줌. 멀리서 다시 바라보면 그것은 별자리의 지도 같기도 하고, 무너지기 직전의 구조물 같기도 하고, 거대한 뇌의 단면 같기도 하다. 사라 지(Sarah Sze)의 설치는 일상의 가장 작은 파편들을 모아 우주적 규모의 풍경을 짓는다.

사라 지(1969년 미국 보스턴 출생)는 예일대학교에서 회화와 건축을 공부한 뒤 뉴욕 시각예술학교(SVA)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2003년 맥아더 펠로십(이른바 '천재상')을 받았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트리플 포인트(Triple Point)》를 발표했고, 이후 스톰 킹 아트 센터의 《폴른 스카이(Fallen Sky)》(2021), 뉴욕 라과디아 공항 터미널 B의 《더 데이보다 짧은(Shorter Than the Day)》(2020) 같은 공공 공간 영구 설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그녀는 회화와 조각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조각은 공간 안에 그려진 회화이고, 그녀의 회화는 평면 위에 옮겨진 조각의 단면이다.


사물들의 별자리 — 《트리플 포인트》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에서 펼쳐진 《트리플 포인트》는 다섯 개의 방을 차례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설치였다. 첫 번째 방 천장에는 추(錘)가 매달려 있고, 그 추는 바닥에 놓인 작은 원형 풍경 위에 미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다음 방으로 들어서면 천체 망원경을 닮은 형태가 나타나고, 그다음 방에서는 책상과 사다리, 부서진 모형들이 한 풍경처럼 결합되어 있다. 작품 제목 '삼중점(triple point)'은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특정한 온도와 압력 조건을 가리키는 물리학 용어다. 그녀의 설치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물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모형이 되고, 모형이 다시 우주적 도식이 되는 그 임계점을, 그녀는 공간 안에 만들어 낸다.


거꾸로 떨어진 하늘 — 《폴른 스카이》

2021년 뉴욕주 스톰 킹 아트 센터의 너른 잔디밭 위에 지름 11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원형 구덩이가 들어섰다. 그 안쪽 면 전체는 천 개에 가까운 스테인리스 강철 디스크로 덮여 있다. 햇빛이 비치면 거울처럼 하늘을 반사하고, 비가 내리면 표면에 작은 물방울이 모여 또 다른 하늘을 만든다. 정확한 기하학적 형태로 시작된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풀과 이끼가 자라 들어와 점점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간다. 하늘이 땅으로 떨어진 자리, 혹은 땅이 하늘을 받아 안은 자리. 사라 지에게 풍경은 늘 그 두 방향이 서로 뒤집히는 곳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천장 — 《더 데이보다 짧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 터미널 B의 출국장 천장에는 거대한 구체에 가까운 형태가 떠 있다. 무수히 많은 사진이 작은 알루미늄 띠 위에 인쇄되어 그 구체의 표면을 이룬다. 사진의 내용은 단 하나, 뉴욕의 하늘이다. 작가는 새벽부터 한밤까지 다양한 시간대에 같은 하늘을 촬영한 수천 장의 이미지를 모았다. 작품의 제목 '더 데이보다 짧은(Shorter Than the Day)'은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에서 가져왔다. 비행기를 타고 막 도시를 떠나는 사람과 비행기에서 막 내려 도시로 들어서는 사람이, 결국은 같은 하늘 아래로 들어선다는 사실. 그 평범하고도 거대한 진실이 공항이라는 가장 분주한 공간 위에 조용히 떠 있다.


글을 마치며

사라 지의 작업실에는 늘 작은 사물들이 쌓여 있다. 다 쓴 화구, 끊어진 끈, 한 번 쓰고 버려진 종이컵. 다른 작가에게는 그저 잡동사니인 것들이, 그녀에게는 우주를 짓는 재료가 된다. 우리가 무심코 쓰고 버리는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였다. 그녀의 설치 앞에 서면 그 사실이 문득 또렷해진다. 정보가 넘치고 모든 것이 화면 안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에, 그녀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로 다시 풍경을 짓는다. 그것은 작은 저항이기도 하다. 흩어지는 것들 가운데서,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서로를 붙잡아 둘 수 있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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