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퍼 엘리아손(Olafur Eliasson): 인공 태양 아래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올라퍼 엘리아손: 인공 태양 아래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2003년 가을, 런던 테이트 모던의 거대한 터빈 홀 천장에 거대한 노란 원이 떠올랐다. 지름 15미터에 가까운 반원형 설치물이 거울이 달린 천장에 비쳐 완전한 원처럼 보였고, 200여 개의 단색 나트륨 램프에서 나온 황금빛이 홀 전체를 한 빛깔로 물들였다. 안개 분무기에서 미세한 수증기가 천천히 퍼져 나오고, 그 안개 속에서 빛은 더 부드럽고 더 묵직해졌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닥에 누웠다. 천장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올려다보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머물렀다. 〈웨더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 — 올라퍼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이 만든 이 인공 태양은 6개월 동안 약 200만 명의 관객을 그 아래로 불러들였다. 미술관이 한 도시의 거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업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증명했다.

올라퍼 엘리아손(1967년 코펜하겐 출생)은 아이슬란드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덴마크와 아이슬란드를 오가며 보냈다. 그가 자란 풍경은 빙하, 화산, 끝없는 안개와 오로라였다. 1995년 코펜하겐 왕립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베를린에 작업실을 차렸고, 지금 그곳은 약 100명의 건축가, 엔지니어, 요리사, 연구자가 함께 일하는 거대한 스튜디오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종종 "조각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부른다. 빛, 안개, 물, 색, 거울 — 그가 다루는 재료는 거의 모두 비물질에 가깝다. 그러나 그 비물질이 만들어 내는 감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하다. 그의 작업이 던지는 질문은 한 가지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로 자연인가, 아니면 우리가 자연이라고 합의한 어떤 약속에 불과한가.


빛이 도시의 강을 물들이다 — 〈그린 리버〉

1998년부터 엘리아손은 유럽 여러 도시의 강에 식용 색소 우라닌을 풀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스톡홀름, 도쿄, 베를린, 모스.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갑자기 형광 초록색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고, 도시의 시청에 전화를 걸고, 환경 단체에 신고한다. 우라닌은 무해한 추적 색소다. 그러나 같은 강이 어제와 오늘 다르게 보일 때, 그것이 익숙했던 풍경에 균열을 낸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강이 실제로는 한 도시의 가장 중요한 풍경이었다는 사실, 우리가 그 풍경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 하는 사실이 그 초록빛 위로 떠오른다. 작가는 이 작업이 "도시가 자기 강을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작품은 며칠 안에 사라진다. 그러나 한 번 그 풍경을 본 사람은 그 강을 더 이상 같은 눈으로 보지 못한다.


빙하를 도시 한가운데로 — 〈얼음 시계〉

2014년부터 엘리아손은 그린란드 피요르드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덩어리를 코펜하겐, 파리, 런던 같은 도시의 광장 한가운데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12개의 거대한 얼음이 시계의 숫자판처럼 원형으로 배열된다. 작품의 제목은 〈아이스 워치(Ice Watch)〉. 사람들은 다가가서 얼음을 만지고, 손바닥을 대 보고, 사진을 찍는다. 얼음은 도시의 햇볕 아래 며칠 만에 모두 녹아 사라진다. 기후 변화에 관한 어떤 통계 자료보다 이 한 덩어리의 얼음이 더 직접적인 감각을 만든다. 녹아 가는 얼음에 손을 대 본 사람은, 그 차가움과 그 사라짐을 자기 몸으로 한 번 통과한다. 작가는 그 통과를 만들기 위해 얼음을 옮겨 왔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환경 미술의 형식이다. 통계가 아니라 손바닥의 감각.


자연의 약속 — 〈너의 무지개 파노라마〉

2011년 덴마크 오르후스 시 미술관 ARoS의 옥상에는 지름 약 50미터의 둥근 회랑이 들어섰다. 회랑의 외벽 전체는 무지개의 모든 색을 한 바퀴 따라 도는 색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풍경이 색으로 물든다. 빨간 유리 안에서는 도시 전체가 붉게 보이고, 노란 유리 안에서는 같은 풍경이 노랗게 보이며, 보라색 유리 안에서는 다시 다른 도시처럼 보인다. 우리가 객관이라 믿어 온 풍경은 사실 우리가 어떤 색의 유리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엘리아손의 옥상 회랑은 그 사실을 가장 가벼운 방법으로 가르친다. 무지개라는 자연 현상의 색을 따라 한 바퀴 걷고 나면, 우리는 그 도시를 처음 보았던 자리로 돌아온다. 다만 같은 도시가 더는 같지 않다.


글을 마치며

엘리아손의 작업은 거의 모두 일시적이다. 인공 태양은 전시가 끝나면 해체되고, 강의 초록빛은 며칠 만에 흘러간다. 광장의 얼음은 녹아 없어지고, 옥상의 색유리만 남은 채 그곳을 통과한 풍경은 매번 새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다. 그가 남기고자 하는 것은, 한 번 그 자리를 통과한 사람이 다시는 예전의 눈으로 같은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되는 작은 사건이다.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강,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었던 하늘, 손에 닿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온 공기. 그의 작품을 한 번 통과한 뒤에는 그 모든 것이 잠시 낯설어진다. 자연이라 부르던 것이 늘 거기 그렇게 있어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새로 알아차려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무엇이라는 사실 — 그가 빛과 안개와 색과 얼음으로 한 번씩 일러 주는 것은 결국 그 한 가지에 가깝다. 미술관을 빠져나와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그 일러 줌을 잠시 기억한다. 그 짧은 기억이 그가 미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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