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 하툼(Mona Hatoum): 익숙한 것이 칼이 될 때
모나 하툼: 익숙한 것이 칼이 될 때
서너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갈 만한 거대한 강철 강판이 전시장 한가운데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우리가 부엌에서 흔히 쓰던 사물 — 치즈를 갈 때 쓰는 그레이터(grater) — 라는 사실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한다. 다만 크기가 사람만 하다. 표면의 칼날 같은 돌기들이 별안간 무기처럼 다가온다. 모나 하툼(Mona Hatoum)의 《그레이터 디바이드(Grater Divide)》, 가정용 식기 하나를 인간 크기의 폭력 장치로 옮겨 놓은 이 작업은 그녀의 작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 준다. 익숙한 것이 천천히 낯설어진다. 그리고 낯설어진 그 자리에, 우리가 평소 외면해 온 무엇이 떠오른다.
모나 하툼(1952년 베이루트 출생)은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1948년 하이파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이었다. 1975년 짧은 영국 여행 중에 레바논 내전이 터졌고, 그녀는 베이루트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강제된 망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런던의 바이엄 쇼 미술학교와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1980년대에는 신체와 정치를 결합한 강렬한 퍼포먼스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설치와 조각으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지금은 런던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한다. 그녀의 모든 작업은 한 가지 사실 위에 서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이라는 곳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자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
자기 몸의 안쪽 — 《코르 에트랑제(Corps étranger)》
1994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처음 선보인 이 설치 안으로 들어서면, 관객은 둥근 흰색 부스에 갇힌 듯한 공간에 서게 된다. 발 아래 원형 스크린에는 작가 자신의 몸 내부를 촬영한 영상이 끝없이 흐른다. 위장의 점막, 자궁의 안쪽, 식도의 어둠. 의료용 카메라가 붙잡아 낸 이 화면들은 너무 가까이 다가간 나머지 차라리 추상에 가깝다. 가장 익숙해야 할 자기 몸이 가장 낯선 풍경이 되어 펼쳐지는 그 순간, 관객은 잠시 자기 몸과 거리를 두게 된다. 작품 제목 'étranger'는 이중의 의미로 작동한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떠밀려 온 외국인,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몸을 외국처럼 경험하는 사람.
전구가 매달린 우리 — 《라이트 센텐스(Light Sentence)》
격자 모양의 철망 사물함 수십 개가 'ㄷ' 자로 둘러싼 공간 안에서, 천장에 매달린 전구 하나가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인다. 전구가 오르내릴 때마다 철망의 그림자가 벽 전체로 흔들리며 퍼져 나간다. 수용소, 감옥, 난민 캠프, 산업 단지 안의 거주 공간 — 이름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관객은 자신이 그 모든 공간 안에 동시에 들어와 있는 듯한 감각을 받는다. 빛은 본래 위로의 상징이지만, 이 전구 아래서 빛은 차라리 심문의 도구처럼 느껴진다. 영어 제목 《Light Sentence》는 '가벼운 형량'과 '빛으로 된 문장'이라는 두 의미를 동시에 품는다. 하툼의 언어 감각이 가장 단단하게 응축된 자리이기도 하다.
붉은 지구 — 《핫 스팟(Hot Spot)》
스테인리스로 만든 거대한 지구본 위에 모든 대륙의 윤곽이 강렬한 붉은 네온으로 그어져 있다. 작품 제목 그대로 'hot spot' — 분쟁 지역, 위기 지역. 그러나 그녀의 지구본 위에서는 어떤 한 곳도 안전하지 않다. 모든 대륙이, 모든 국경이 동시에 붉게 타오른다. 어느 한 군데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전체가 이미 위험에 잠겨 있다는 사실. 단순한 형태 안에 정치적 진단이 가장 단단하게 응축된 작업이다.
글을 마치며
하툼의 작업에는 가구가 자주 등장한다. 침대, 의자, 식탁, 식기. 그러나 그녀의 손을 거친 가구는 더 이상 가정의 풍경에 속하지 않는다. 식탁은 갑자기 거대해지고, 침대는 강철로 변해 차갑게 식고, 부엌의 갈이판은 사람을 가르는 칸막이가 된다. 망명에서 출발한 그녀의 시선은, 가정이라는 가장 친숙한 단위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가리킨다. 그녀의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우리가 손에 쥐는 것은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사물들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되는 작은 균열, 하툼이 만들고자 한 것은 바로 그 균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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