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워커(Kara Walker): 실루엣이 가리키는 가장 어두운 자리
카라 워커: 실루엣이 가리키는 가장 어두운 자리
전시장 한쪽 벽이 흰 빛으로 환하게 빛난다. 그 위에 검은 종이를 오려 만든 형상들이 길게 행렬을 이루며 펼쳐져 있다. 멀리서 보면 19세기 미국 남부의 어느 농장 풍경 같다.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신사, 어깨에 보따리를 멘 아이, 나무, 말, 마차. 우아하고 단정한 윤곽선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풍경은 무너진다. 한 인물의 손에는 다른 인물의 머리채가 잡혀 있고, 한 여자는 무릎을 꿇은 채 입을 벌리고 있으며, 한 아이는 어른의 발치에서 알 수 없는 자세로 누워 있다. 19세기 살롱의 정중한 형식 안에 노예제의 가장 잔혹한 장면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카라 워커(Kara Walker)의 작업은 그 충격을 정확히 노린다. 그녀는 가장 우아한 형식을 빌려, 가장 외면당해 온 역사를 다시 가운데로 끌어낸다.
카라 워커(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스톡턴 출생)는 13세에 아버지의 교수직을 따라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의 진보적인 도시에서 자라던 흑인 소녀가 갑자기 옛 남부 한가운데로 들어선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인종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일상에 어떤 무게로 얹히는가를 처음 직접 경험했다. 애틀랜타 미술대학교를 거쳐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석사를 마쳤고, 1994년 뉴욕 드로잉 센터에서 첫 대규모 실루엣 설치를 발표하면서 25세에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에는 28세의 나이로 맥아더 펠로십을 받아 당시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은 받아들여지는 만큼 격렬한 비판도 받았다. 흑인 공동체 안에서도 그녀의 이미지가 인종주의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작가는 그 비판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외면해 온 자리를 직시하지 않으면 어떤 치유도 시작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형식이 내용을 배반할 때 — 〈고네(Gone)〉
1994년 작 〈고네: 한 흑인 소녀의 허벅지에서 일어난 남북전쟁의 역사적 로맨스(Gone: An Historical Romance of a Civil War as It Occurred Between the Dusky Thighs of One Young Negress and Her Heart)〉는 그녀의 이름을 단번에 알린 작업이다. 약 15미터 길이의 흰 벽에 검은 종이로 오려 낸 실루엣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풍경.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그 풍경은 강간, 폭력, 절단, 비명의 한 무대로 바뀐다. 작품의 제목 자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제(Gone with the Wind)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녀는 미국이 가장 사랑한 남부 로맨스의 형식 안에 그 로맨스가 끝까지 외면해 온 진실을 새겨 넣는다. 실루엣이라는 19세기 응접실의 우아한 장식 형식이, 같은 시대의 가장 어두운 장면을 지목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설탕으로 만든 거대한 신체 — 〈서틀티(A Subtlety)〉
2014년 뉴욕 브루클린의 옛 도미노 설탕 공장 폐허에서 워커는 거대한 조각을 선보였다. 길이 23미터, 높이 11미터에 달하는 스핑크스의 형상. 흑인 여성의 얼굴과 몸이 결합된 이 거대한 형상은 머리에는 노예 시기 미국 흑인 여성에게 자주 씌워지던 두건을 두르고 있고, 몸 전체는 흰 설탕으로 덮여 있었다. 작품의 정식 제목은 〈서틀티, 또는 굉장한 설탕 아기(A Subtlety, or the Marvelous Sugar Baby)〉. 부제에는 "신세계의 사탕수수밭에서 우리의 단맛을 정제해 준 모든 무급 노예 장인들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적혀 있었다. 설탕은 한때 노예의 노동으로 만들어져 부유한 식탁에 오르던 가장 달콤한 사치품이었다. 워커는 그 단맛의 역사를 거대한 신체의 형태로 다시 세웠다. 관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중 일부는 농담을 던졌다. 작가는 그 반응까지를 작품의 일부로 보았다. 달콤한 것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것이 곧 그 단맛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그림자의 극장 — 영상 설치들
2000년대 이후 워커는 평면의 실루엣을 영상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검은 종이 인형을 막대에 끼워 화면 뒤에서 움직이고, 그 그림자를 카메라로 촬영해 19세기 그림자극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다. 어린이 책의 한 장면 같은 천진한 도입부가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화면은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미끄러진다. 음악은 옛 흑인 영가나 미국의 민속 곡조를 사용한다. 그녀의 영상 안에서 흑인 여성의 신체는 자주 폭력의 무대가 된다. 보는 관객은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작가가 정확히 의도한 자리다. 그녀는 우리가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흑인 여성의 이미지를 결코 만들지 않는다. 그 이미지가 편안하게 소비되어 왔던 역사 자체가 그녀가 응시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워커의 작업은 자주 분노의 작업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녀의 분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이자, 그 가해를 보고도 외면해 온 사회에 대한 분노이자, 그 사회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계속 묻는 한 사람의 분노다. 그녀가 검은 종이로 오려 낸 실루엣은 그 모든 분노가 통과하는 가장 단순한 형식이다. 색이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은 그 형상 안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한 번에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그 모호함을 일부러 남겨 둔다. 한 사회의 폭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가해는 늘 단정한 형식 안에 숨고, 피해는 늘 풍경의 한 부분처럼 처리된다. 그녀의 검은 종이 실루엣이 흰 벽 위에서 우리를 멈춰 세울 때, 우리는 잠시 우리가 매일 보는 풍경 안에 어떤 것들이 같은 방식으로 숨어 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그녀의 작업이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거칠게 우리를 흔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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