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시간을 노출시킨 사진

 

히로시 스기모토: 시간을 노출시킨 사진

오래된 영화관 한가운데 카메라가 놓여 있다. 셔터가 열린다. 영화가 시작되고, 두 시간 가까운 상영이 끝날 때까지 셔터는 닫히지 않는다. 빛은 화면 위에서 끊임없이 변하지만, 카메라는 그 모든 빛을 한 장의 인화지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결과는 단순하다. 텅 빈 흰색 스크린, 그리고 그 빛에 천천히 드러난 객석과 천장. 줄거리도 인물도 대사도 모두 사라진다. 한 편의 영화가 통째로 빛 한 덩어리로 응축되는 것이다.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극장(Theaters)》, 시간을 사진의 재료로 다루는 그의 방식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히로시 스기모토(1948년 도쿄 출생)는 도쿄 릿쿄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칼리지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74년 뉴욕에 정착해서는 한동안 일본 골동품을 거래하며 생계를 이어 가는 가운데 작업을 이어 갔다. 동양의 시간 감각과 서양의 사진 기술이 그의 작업 안에서 천천히 만난다. 8x10 대형 카메라, 흑백 필름, 긴 노출, 고도로 통제된 인화 — 거의 19세기적인 기술 위에 그는 가장 동시대적인 질문을 얹는다. 사진은 무엇을 기록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진은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가. 그는 이 질문을 5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묻고 있다.


자연의 모형 — 《디오라마(Dioramas)》

1976년, 스기모토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디오라마관에 들어섰다. 박제된 동물과 페인트로 그린 배경, 인공 식물과 가짜 하늘. 그는 카메라를 적절한 각도에 고정하고 셔터를 길게 열어 두었다. 인화된 결과는 놀랍게도 진짜 자연 풍경에 가까웠다. 박제와 회화로 이루어진 가짜 풍경이, 카메라의 단일한 시점 아래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사진이 된다. 사진의 기계적 객관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매우 약한 약속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는 가만히 가리킨다. 이 연작은 이후 그의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가장 오래된 풍경 — 《바다 풍경(Seascapes)》

1980년대 초부터 스기모토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어 왔다. 화면의 정확히 절반은 하늘, 정확히 절반은 바다. 다른 어떤 요소도 들어 있지 않다. 노르웨이 해, 카리브 해, 동중국해, 흑해, 태평양. 장소도 시간도 다르지만, 사진들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가 찍는 것은 특정한 풍경이 아니라, 인류 이전부터 거의 변함없이 존재해 온 한 장면이다. 우리의 가장 먼 조상이 처음 바다 앞에 섰을 때 보았을 그 풍경. 사진은 보통 한순간을 잡아 둔다고 여겨지지만, 스기모토는 사진으로 가장 긴 시간을 끌어안으려 한다.


흐려진 명작 — 《건축(Architecture)》

1997년에 시작된 《건축》 연작에서 스기모토는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시그램 빌딩,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같은 모더니즘 건축의 명작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만 의도적으로 초점을 두 배 어긋나게 잡았다. 결과는 형태의 본질만 흐릿하게 남은 사진. 디테일은 모두 사라지고, 건축가의 머릿속에 처음 떠올랐을 가장 단순한 윤곽만 화면 위에 떠 있다. 그는 건축을 짓는 일과 잊는 일 사이 어딘가에서 사진의 자리를 찾는다.


글을 마치며

스기모토는 자주 자신을 "사진가가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카메라는 매번 같은 일을 한다. 셔터를 열고, 충분히 오래 기다리고, 그동안 화면에 들어온 모든 빛을 단 한 장의 인화지에 누적시킨다. 영화 한 편의 두 시간, 자연사박물관의 한 장면,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가장 오래된 선. 그가 사진에 담는 것은 결코 한순간이 아니다. 한순간을 부정하는, 누적된 시간이다. 디지털 사진이 일상의 모든 순간을 잘게 쪼개어 클라우드에 흩뿌리는 시대에, 그는 여전히 19세기의 카메라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그의 사진을 하나의 명상에 가깝게 만든다. 우리가 그의 인화지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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