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단순한 형태에 도달한 사람 — 엘즈워스 켈리(Ellsworth Kelly), 색과 모양의 세기
가장 단순한 형태에 도달한 사람 — 엘즈워스 켈리, 색과 모양의 세기
들어가며
거대한 캔버스. 그 위에는 단 하나의 형태와 단 하나의 색만 있다. 빨강. 곡선. 또는 파랑. 직선. 그뿐이다. 인물도, 풍경도, 이야기도 없다. 그저 한 형태가 한 색으로 거기 있다. 더 빼면 그림이 사라지고, 더 보태면 그림이 망가진다. 정확히 그 균형점에 그의 그림이 있다.
엘즈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 미국 하드 에지(Hard-edge) 회화의 거장, 색면 추상의 정점, 미니멀리즘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미니멀리즘이었던 사람. 워홀이 너무 많은 것의 시대를 그렸다면, 켈리는 정반대로 갔다. 하나만 남기는 일. 92세까지 살며 65년 동안 그는 그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렸다.
워홀과 같은 시대, 같은 뉴욕에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미학은 정반대였다. 켈리는 우리 시리즈에서 만난 도널드 저드, 이배, 김창열의 친척에 가깝다 — 한 가지에 평생을 거는 화가들의 가족.
보스턴의 소년, 새 관찰자
1923년 5월 31일, 켈리는 뉴욕주 뉴버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새 관찰에 빠졌다. 할머니에게서 받은 새 도감을 들고 숲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마리의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 — 단순한 실루엣, 색깔, 형태." 그 어린 시절의 응시가 평생의 작업이 된다. 하나의 형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부모는 그가 미술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브루클린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시작하고, 1943년 군에 입대한다.
위장(Camouflage) 부대 — 결정적 경험
2차 대전 동안 켈리는 미군의 고스트 아미(Ghost Army, 23사단 23특수부대) 에 배속됐다. 적을 속이기 위해 가짜 탱크와 가짜 부대를 만드는 위장(camouflage) 전문 부대. 화가, 디자이너, 광고 전문가들이 모여 있던 이 특수 부대에서 켈리는 형태와 색이 어떻게 시각을 속이는가를 직접 배웠다.
이 경험이 그의 평생 작업을 결정지었다. 위장은 단순한 형태와 평면적 색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이 정밀한 사실보다 더 강하게 시각을 사로잡는다. 후일 그가 만든 모든 그림은 이 통찰의 변주였다.
파리 — 1948~1954년
전후 G.I. 빌의 지원으로 켈리는 보스턴 미술관 부속 학교를 다니다 1948년 파리로 향한다. 6년간의 파리 체류 동안 그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폭풍 — 폴록, 더 쿠닝의 격렬한 자아 표현 — 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 거리감이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파리에서 그는 장 아르프(Jean Arp) 의 생체 형태 추상,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의 단순한 조각, 그리고 마티스의 종이 오리기(cut-outs) 에 매혹됐다. 그가 한 가장 중요한 발견 — "형태는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1949년경, 그는 자신을 흥분시키는 형태들을 주위의 일상에서 찾기 시작한다. 창문, 다리의 그림자, 식물의 잎, 폐허된 벽의 균열. 그것들을 종이 위에 단순화시켜 옮긴다.
이것이 그의 평생 방법론이 된다. 추상화는 자연에서 시작한다. 그의 작업은 순수한 기하학이 아니다. 모든 형태는 세계의 어떤 것을 응시하다가 도달한 결과물이다. 〈Plant Drawings〉, 〈Window〉 시리즈는 이 시기의 결정적 작업들이다.
1954년 — 미국으로의 귀환
1954년 켈리는 미국으로 돌아온다. 1956년 5월, 뉴욕 베티 파슨스(Betty Parsons) 갤러리에서 첫 미국 개인전을 연다. 그러나 당시 뉴욕은 폴록과 더 쿠닝의 추상표현주의가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 켈리의 차분하고 평면적인 색면은 "너무 유럽적" 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1957년 휘트니 미술관의 〈Young America 1957〉 전시에서 그의 작품 3점이 선정되며 입지가 굳어졌다. 1959년 MoMA의 〈Sixteen Americans〉 전시에 재스퍼 존스, 라우셴버그, 스텔라와 함께 참여한다. 이때부터 그는 미국 미술의 중심으로 진입한다.
하드 에지(Hard-edge) 회화의 발명
1960년대에 켈리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하드 에지 페인팅 — 색과 색 사이에 붓 자국이나 그라데이션 없이 칼로 자른 듯 선명한 경계를 가진 회화. 추상표현주의의 격렬한 붓질에 대한 정반대의 응답이었다.
그의 캔버스에는 단 하나의 형태가 들어 있다. 사각형. 삼각형. 곡선. 또는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 캔버스 자체가 직사각형이 아닌 형태로 잘려 있다. 〈Red Curve〉, 〈Blue Yellow Red〉, 〈Three Panels: Green Yellow Blue〉. 색은 마티스에서 왔지만, 형태는 그만의 것이었다.
〈Chatham Series〉(1971) — L자의 시(詩)
1970년 켈리는 뉴욕주 차담(Chatham) 인근에 큰 작업실을 얻고, 1년 동안 14점의 〈Chatham Series〉를 그렸다. 두 개의 캔버스를 L자(또는 ㄱ자) 모양으로 결합한 작품들. 한 패널은 한 색, 다른 패널은 다른 색. 두 색의 만남, 두 형태의 균형.
이 시리즈는 2013년 MoMA에서 단독 전시되었다. 켈리가 90세 되던 해였다. 50년이 지나도 그 단순한 결합의 힘은 그대로였다.
후기 — 곡선의 미학
1990년대 이후 켈리는 점점 더 곡선에 집중했다. 단 하나의 곡선이 거대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작업들. 〈White Curve〉, 〈Spectrum Colors Arranged by Chance〉. 단순함이 극단으로 나아가면서도, 그것이 결코 차갑지 않았다. 거기엔 숨이 들어 있었다.
조각도 평행하게 작업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공공 조각 중 하나는 국립 홀로코스트 추모관(워싱턴 D.C.)을 위한 〈Memorial〉(1993). 거대한 흰색 사각 평면 하나. 그것이 6백만 명의 죽음에 대한 그의 응답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자리.
〈Austin〉(2018) — 마지막 유작
2015년 12월 27일, 켈리는 뉴욕 스펜서타운의 자택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대작은 사후에 완성되어 공개됐다. 텍사스주 오스틴, 텍사스 대학교 캠퍼스에 세워진 〈Austin〉(2018) — 그가 평생 꿈꿨던 "빛의 예배당". 십자형 평면에 색유리창을 단 작은 건물. 마티스의 〈로사리오 예배당〉을 향한 미국의 응답이었다. 90세를 넘긴 화가가 자신의 마지막 형태로 빛 자체를 그려넣은 것이다.
한국에서의 켈리
켈리는 한국에서 워홀이나 호크니만큼 대중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깊다. 이우환의 점과 선, 박서보의 묘법(描法) — 한국 단색화의 가장 중요한 미학 중 일부가 켈리와 같은 자리에서 자라났다. 두 미술이 서로를 모르는 채로 비슷한 결을 가진 자리. 미니멀리즘의 동서양 두 흐름이 만난다.
매튜 막스(Matthew Marks) 갤러리, 가고시안, 그리고 여러 미국 주요 미술관(MoMA, 휘트니, 시카고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마치며 — 자연이라는 출발점
켈리의 그림 앞에 처음 서면, "이게 그림인가?" 묻게 된다. 너무 단순해서. 한 색, 한 형태. 그러나 다시 보면, 그 단순함이 어디서 왔는지가 천천히 떠오른다. 창문 너머로 본 빛, 잎의 그림자, 다리 아래 강의 곡선. 그가 평생 본 세계의 모든 형태들이 한 점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추상화가라고만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켈리 본인이 가장 명확하게 말했다. "내 작품은 추상이 아닙니다. 내가 본 것에서 시작합니다. 단지 그것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줄였을 뿐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만난 호크니가 세계를 풍부하게 그렸다면, 켈리는 세계를 가장 단순하게 그렸다. 두 길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다 — 세계를 정직하게 보는 일.
다음에 빨강 한 색만 칠해진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설 일이 있다면, 잠깐 멈춰 그 색을 들여다보시길. 한 화가가 평생을 들여 그 한 가지 빨강에 도달했다는 사실 — 그것이 단순한 색 너머의 깊이를 만든다.
"내 첫 교훈은 객관적으로 볼 것, 보이는 것의 모든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진짜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 Ellsworth K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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