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막을 수는 없다 — 데이비드 호크니, 색채와 기쁨의 거장
봄을 막을 수는 없다 — 데이비드 호크니, 색채와 기쁨의 거장
들어가며
캘리포니아의 한낮. 하늘은 녹아내릴 듯 푸르고, 수영장의 물결은 햇빛을 잘게 부수어 흩뿌린다. 누군가 막 다이빙을 했는지 수면이 하얗게 부서진다. 풀장 옆 모더니즘 주택은 단정하고, 야자수 한 그루가 무심하게 서 있다. 수영장 안의 첨벙거림 외에는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다.
이 한 장면을 본 적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의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 20세기 미술이 만들어낸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행복한 이미지 중 하나. 영국 북부의 잿빛 산업도시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캘리포니아의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빛을 평생 캔버스 위에 옮겨 담은 결과다.
이우환의 점, 이배의 검정, 저드의 상자, 포라스-김의 편지 —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작가들이 모두 침묵과 사유의 작가들이었다면, 호크니는 그 반대편에 있다. 색이 노래하고, 빛이 춤추고, 친구들이 웃고, 봄이 다시 오는 세계. 88세의 그가 여전히 매일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브래드퍼드의 안경 쓴 소년
1937년 7월 9일, 호크니는 영국 북부 요크셔의 산업도시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났다. 5남매 중 넷째. 노동자 계급 가정. 전쟁 직후의 영국은 모든 것이 회색이었지만, 어린 호크니의 머릿속은 색으로 가득했다. 열한 살에 그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브래드퍼드 미술학교를 거쳐 1959년 런던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에 입학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한 사람의 캐릭터였다. 진갈색 머리를 금발로 탈색하고, 동그란 검은 뿔테 안경에 화려한 색의 슈트. 자신의 동성애를 일찌감치 작품 속에 숨김없이 드러낸 것도 이 시절이다. 동성애가 영국에서 여전히 불법이던 시절(1967년에야 합법화), 그는 화면 안에 사랑하는 남자들을 그렸다. 그것은 작은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졸업과 함께 그는 단숨에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가 됐다.
캘리포니아 — 수영장의 발견
1964년, 호크니의 인생을 가른 결정.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영국의 차가운 회색 빛 대신 캘리포니아의 마른 햇빛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모티프 — 수영장.
수영장은 호크니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 가장 정직하게 드러나는 장소, 물이 그림자를 만들고 햇빛을 산란시키는 매혹적인 사각형, 그리고 캘리포니아 부르주아의 욕망과 여유가 응축된 무대였다. 무엇보다 그는 회화의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 — '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 에 평생을 바쳤다.
물은 투명하다. 그래서 수영장 바닥의 타일이 비친다. 그러나 동시에 표면은 빛을 반사하고, 잔물결이 그것을 잘게 부순다. 호크니는 그 물결을 그래픽한 곡선과 점으로 양식화했다. 사진처럼 그리려 하지 않고, 물의 본질을 단순한 기호로 압축했다. 〈더 큰 첨벙〉(1967), 〈피터가 풀에서 나오다(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1966), 〈예술가의 자화상(수영장의 두 사람)(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 — 이 시리즈는 미술사가 기억하는 가장 사랑받는 이미지 묶음이 되었다.
특히 〈예술가의 자화상〉(1972)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030만 달러(당시 환율 약 1,019억 원) 에 낙찰되어, 생존 작가 작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더블 포트레이트 — 두 사람 사이의 공기
호크니의 또 다른 결정적 영토는 이중 초상화(Double Portrait) 시리즈다.
두 사람이 한 화면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종종 다른 곳을 응시하거나, 자기 안에 갇힌 채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 사이의 정적, 친밀함과 거리감, 사랑과 권태가 동시에 흐르는 그 공간 — 그것이 호크니가 그리려 한 것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클라크 부부와 퍼시(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71). 패션 디자이너 친구 부부의 신혼 풍경이다. 흰 장식 카펫, 발코니로 들어오는 빛, 무릎 위의 흰 고양이 퍼시. 모든 것이 우아한데, 두 사람의 시선은 미묘하게 어긋난다. 이 그림은 2014년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 1위로 뽑혔다.
또 다른 걸작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Christopher Isherwood and Don Bachardy)〉(1968)는 호크니의 친구이자 작가인 이셔우드(『베를린 이야기』의 저자, 영화 〈카바레〉의 원작자)와 그의 연인을 그렸다. 동성애가 여전히 사회적 금기였던 시대에, 호크니는 두 남자의 사랑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캔버스에 올렸다. 그것은 선언이 아니라 존재의 기록이었다.
사진 콜라주와 동양화의 발견
1980년대 초, 호크니는 새로운 매체에 빠진다. 폴라로이드 사진이다.
그는 한 풍경이나 인물을 수십 장의 폴라로이드로 분할 촬영해 다시 이어 붙였다. 이른바 '조이너(Joiners)' 작업. 한 시점에서 본 매끈한 사진이 아니라, 시간과 시점이 여러 번 겹쳐진 합성 이미지다.
이 작업의 사상적 배경에는 흥미롭게도 동양화가 있다. 호크니는 중국 산수화의 두루마리(handscroll)에 매료되어 있었다. 두루마리는 한 시점에서 그려진 게 아니라, 산을 따라 걷는 사람의 시선처럼 이동하는 시점을 담는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 회화를 지배해온 일점 원근법은 사실 거짓말 — 우리 눈은 한 점에 고정되지 않으니까. 호크니는 동양화에서 그것의 대안을 보았다.
이 관심은 1984년 〈집-홀리우드 힐스(A Visit with Christopher and Don, Santa Monica Canyon)〉 같은 회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캔버스 안에서 시점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평면이 의도적으로 어긋나며, 입체파 이후 가장 흥미로운 공간 실험 중 하나가 되었다.
〈비밀 지식(Secret Knowledge)〉 — 미술사를 다시 쓴 화가
2001년, 호크니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미술사의 도전자가 된다. 그는 화집 한 권을 발표한다 — 『비밀 지식: 거장들이 잃어버린 기법을 찾아서(Secret Knowledge)』.
그의 가설은 폭탄 같았다. 15세기부터 서양의 거장들은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루시다, 거울 같은 광학 도구를 비밀리에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얀 반 에이크의 정밀한 묘사, 카라바조의 빛, 베르메르의 진주 같은 광택 — 모두 인간의 맨눈이 아니라 광학 장치를 통해 본 세계의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미술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어떤 학자들은 그를 무모하다고 비웃었고, 어떤 이들은 그의 가설을 진지하게 수용했다. 결론이 무엇이든, 이 책은 화가가 미술사를 다시 보는 방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호크니의 작품 〈더 큰 그랜드 캐니언(A Bigger Grand Canyon)〉(1998) — 60개 캔버스에 걸쳐 7미터가 넘는 폭으로 펼쳐진 다시점 풍경 — 은 이 사상의 회화적 응답이기도 했다.
요크셔의 귀환, 그리고 거대한 풍경
2000년대 중반, 호크니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고향 요크셔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갈증으로.
그는 어린 시절 자전거로 누비던 동요크셔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계절이 색을 바꾸는 길,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지는 산울타리, 비 갠 후의 진창길. 〈워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Bigger Trees near Warter)〉(2007) 은 이 시기의 정점이다. 50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가로 12미터의 거대한 풍경화. 단 한 장의 캔버스로는 이 광활함을 담을 수 없다는 호크니의 신념이 만든 결과물이다.
2011년부터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매체와 사랑에 빠진다. 아이패드.
디지털 시대의 마에스트로 — 아이패드를 든 거장
70대의 화가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어떤 이들은 진짜 회화가 아니라며 비웃었지만, 호크니는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시선" 이라는 그의 평소 신념이 여기서 빛난다.
아이패드는 그에게 항상 곁에 있는 작은 캔버스가 됐다. 새벽에 일어나 침대에서 그날의 첫 햇살을 그릴 수 있고, 정원의 꽃이 피는 순간을 즉각 포착할 수 있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릴 필요도, 캔버스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2019년 이후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작은 마을에 정착해 살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친 2020년, 세상이 멈춘 동안 그는 노르망디의 정원에서 매일 아이패드로 봄을 그렸다. 220점 이상의 그림이 쏟아졌다. 〈220 for 2020〉이라 명명된 이 시리즈는 격리된 시대의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호크니가 그 시기에 남긴 한 마디는 거의 명언이 됐다.
"기억하세요. 그들은 봄을 막을 수 없습니다(Remember they cannot cancel the spring)."
전염병이, 전쟁이, 절망이 무엇을 막아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 그것을 그리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David Hockney 25〉 — 2025년 파리, 어쩌면 마지막 대전시
2025년 4월부터 9월까지, 파리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 은 건물 전체를 단 한 명의 작가에게 내주었다. 누구도 받지 못한 대접이었다. 주인공은 88세 직전의 호크니.
전시 제목은 〈David Hockney 25〉. 1955년 그의 첫 회화 〈아버지의 초상〉부터 2025년 신작까지, 70년에 걸친 400여 점이 11개 갤러리, 4개 층을 가득 채웠다. 호크니 역대 최대 규모이자, 어쩌면 그의 생애 마지막 대규모 전시가 될 가능성이 큰 자리였다.
전시의 무대는 그의 오랜 친구 프랭크 게리(Frank Gehry, 96세) 가 설계한 구름 같은 미술관 건물. 큐레이팅은 또 다른 친구 노먼 로젠탈(80세). 80~90대의 거장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자리. 입구 외벽에 호크니는 분홍색으로 이렇게 적었다 —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잊지 마세요, 그들은 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시에는 호주 캔버라에서 빌려온 〈더 큰 그랜드 캐니언〉, 그의 트레이드마크 〈더 큰 첨벙〉, 더블 포트레이트의 걸작들, 그리고 〈220 for 2020〉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빼곡히 걸린 갤러리 5의 장관까지 모두 모였다. 60여 점의 초상화 갤러리에는 친구 프랭크 게리부터 가수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까지 다양한 얼굴이 함께 걸려 87년의 우정과 만남을 한자리에 모았다.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직접 호크니의 작업실을 방문했고,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평생 호크니의 작품을 사랑해온 컬렉터였다. 한 사람의 화가가 도달할 수 있는 모든 정상이 한 번에 모인 풍경이었다.
한국에서의 호크니
호크니는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작가다. 결정적 순간이 두 차례 있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전 —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 주최한 호크니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1950년대 초기작부터 2017년까지 회화·드로잉·판화 133점이 한국에 왔다.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 〈나의 부모님〉 같은 대표작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그 전시는 한국에서의 호크니 신드롬을 만들었다.
2024년 라이트룸 서울 〈David Hockney: Bigger & Closer〉 — 런던 라이트룸에서 시작된 몰입형 전시가 동대문에 자리잡은 라이트룸 서울에 들어왔다. 거대한 스크린과 음악, 조명 속에서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작가의 어깨너머에서 보는 듯한 경험. 본인은 이를 "내 일관된 커리어의 연장선" 이라 표현했다. 캔버스 → 사진 → 폴라로이드 → 아이패드 → 몰입형 영상 — 매체는 바뀌어도 시선은 한결같다는 것이다.
마치며 — 그리는 일, 사는 일
호크니의 한 인터뷰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 "나는 이미지를 만든다. 기억될 만한 이미지를. 꽤 많이 만들었지.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도 못 만든다."
자랑이 아니다. 일종의 직업적 정직함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것을 평생 멈추지 않았다. 88세에도 그는 매일 6시간씩 작업한다. 폐가 약해 산소가 필요하고,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그동안 침묵하는 작가들을 만났다. 점과 선 사이의 여백을 사유한 이우환, 검은 숯에 노동을 새긴 이배, 산업적 사물을 그저 거기 놓아둔 도널드 저드, 박물관에 정중한 편지를 쓰는 갈라 포라스-김. 그들이 모두 무언가를 빼는 방향으로 예술을 추구했다면, 호크니는 정반대다. 그는 더 많은 색, 더 많은 빛,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봄을 원한다. 비움이 아니라 충만, 사유가 아니라 사랑, 그것이 호크니의 미학이다.
어떤 길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둘 다 옳다. 한쪽은 우리에게 멈춰 서서 들여다보라 하고, 한쪽은 우리에게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고 한다. 두 길이 함께 있어 미술은 풍요롭다.
다음에 공원의 벚꽃이 피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전에 한 번 멈춰서 그저 바라보시길. 색이 어떻게 빛 속에 녹아드는지, 잎새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그 순간 당신은 잠깐, 호크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봄은 언제나 다시 온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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