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플하다 — 장욱진, 까치와 나무와 가족의 화가

 

나는 심플하다 — 장욱진, 까치와 나무와 가족의 화가

들어가며

작은 캔버스. 20cm 남짓의 자그마한 화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작은 집 하나, 큰 나무 한 그루, 그 옆의 사람, 머리 위의 해와 달, 어딘가에 앉은 까치 한 마리.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 원근법도, 비례도 무시되어 있다. 사람보다 나무가 작고, 집보다 새가 크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보면, 그 모든 것이 묘하게 평화롭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평생 사랑한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장욱진(張旭鎭, 1917~1990).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 2세대 서양화가의 다섯 손가락.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그림을 그렸고, 가장 동심에 가까운 자리에 섰던 사람. 평생 그가 한 말이 있다 — "나는 심플하다."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가 만난 작가들 중 그는 가장 따뜻한 자리에 선다. 워홀의 차가운 매스미디어, 저드의 산업적 사물, 톰블리의 격렬한 휘갈김 — 그 모든 큰 것들과 정반대 자리에서 그는 작은 것을 영원하게 그렸다.


충남 연기군의 소년

1917년 11월 26일(음력, 양력 1918년 1월 8일), 장욱진은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8세 무렵부터 이미 그림에 대한 비범한 소질을 보였다. 1937년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으니, 청소년기에 이미 그의 재능은 공인되어 있었다.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하다 퇴학당했고, 성홍열도 앓았다. 양정고보로 편입해 졸업한 후 1939년 도쿄 데이고쿠 미술학교(제국미술학교, 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진학한다.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과 같은 도쿄 유학 2세대 그룹에 그도 속했다. 같은 시기 같은 도쿄에서 한국 근대미술의 별들이 동시에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신사실파, 그리고 한국전쟁

1947년, 30세의 장욱진은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신사실파(新事實派)' 를 결성한다. "사실을 새롭게 보자" 는 주제 의식. 자연과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정신적 본질을 추구한다는 철학. 이 신념은 장욱진의 평생 작업을 관통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부산으로 피난했다. 그 시기에 그가 그린 작은 자화상이 있다. 〈자화상〉(1951) — 종이에 유채, 14.8 × 10.8cm. 손바닥만 한 그 그림 안에서 그는 들판을 가로질러 걷는 한 신사를 그렸다. 검은 모자, 흰 셔츠, 검은 정장. 양옆으로 황금 들판이 펼쳐지고 새들이 날아오른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그가 꾸었던 이상향의 자기 자신이었다. 한국 근대미술의 가장 유명한 자화상 중 하나가 그 작은 그림이다.


까치 — 그의 분신

장욱진의 작품에는 일관된 모티프들이 있다 — 까치, 나무, 해와 달, 집, 가족, 어린아이. 그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까치다.

놀라운 통계가 있다. 그가 평생 그린 유화 730여 점 중 60%에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를 처음 그린 것은 1925년, 8세 무렵의 어린 시절. 마지막 작품 〈까치와 마을〉(1990)까지 65년간 까치는 그의 화면을 떠나지 않았다. 까치는 그의 분신이자 그의 평생 동반자였다.

왜 까치였을까? 한국 시골에서 까치는 길조(吉鳥), 좋은 소식을 알리는 새. 마당에 사는 가장 친근한 새. 장욱진의 동화 같은 화면에서 까치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메신저로 늘 거기 있었다.


모티프들 — 작은 세계의 어휘

장욱진의 화면을 채우는 어휘들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한정된 어휘로 그는 무한한 변주를 만들었다.

  • 집(家) —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그가 평생 가장 사랑한 호칭은 "화가(畫家)" 의 그 집 가(家) 였다. "집도 작품이다" 라고 그는 자주 말했다.
  • 나무 — 큰 나무 한 그루가 화면의 중심을 잡는 경우가 많다. 인물은 그 아래 작게 자리한다.
  • 가족 — 아내, 아이들이 작은 인물로 등장한다. 1955년의 〈가족〉이 가장 유명한 가족 그림.
  • 해와 달 — 같은 화면에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시간을 압축한다.
  • 소, 닭, 강아지 — 시골의 동물 가족들. 모두가 가족이다.

시기별 화실 — 덕소·명륜동·수안보·신갈

흥미롭게도 장욱진의 작품 시기는 그가 머문 화실의 위치로 나뉜다. 그는 평생 도시를 떠나 자연 가까이 살았다. 그가 살던 곳이 개발되기 시작하면, 그는 미련 없이 더 깊은 자연으로 이주했다.

  • 덕소 시기 (1963~1975) — 12년간 혼자 작업실을 지키며 오로지 그림에만 매진했다. 아내가 서점을 운영하며 가장 역할을 대신했다.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작품에 진하게 배어 있는 시기.
  • 명륜동 시기 (1975~1979) — 가족과 다시 함께. 평화롭고 조화로운 가족 그림들이 늘어난다.
  • 수안보 시기 (1980~1985) — 부인과 단둘이 충북 수안보에서 시골 생활. 가장 도가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나온다.
  • 신갈 시기 (1986~1990) — 마지막 시기. 강한 색채, 장식적이고 화려한 작품이 등장한다.

아내의 초상 — 〈진진묘(眞眞妙)〉(1970)

장욱진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는 아내의 초상이다. 〈진진묘(眞眞妙)〉(1970). 진진묘는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法名). 집에서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다가 화상(畵想)이 떠올라 그렸다고 그가 직접 밝힌 작품이다.

아내가 결가부좌를 한 채 명상하는 모습. 단순한 윤곽선, 반복되는 동그라미. 불상을 닮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부처처럼 그린 것이다. 그는 평생 아내에게 깊이 의지했다. 덕소 시절 12년 동안 아내가 가장 역할을 대신해주지 않았다면 그의 그림은 존재할 수 없었다.


〈밤과 노인〉(1990) — 마지막 그림

1990년, 장욱진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그렸다. 〈밤과 노인〉. 한 노인이 달과 집과 아이, 나무, 까치, 산을 남겨두고 하늘로 천천히 떠오르는 듯한 모습. 노인은 분명 장욱진 자신의 자화상이다. 그가 평생 그린 모든 모티프 — 달, 집, 아이, 나무, 까치, 산 — 가 한 화면에 모여 있고, 그는 그것들에 작별을 고하며 떠나간다.

이 그림을 그린 같은 해 12월 27일, 그는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3세.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마지막 그림은 그의 평생을 작별인사로 압축했다.


〈까치와 마을〉 — 또 다른 마지막

흥미로운 사실. 그가 그린 마지막 까치 그림이 〈까치와 마을〉(1990) 이다. 1925년 8세 때 처음 그린 까치, 그리고 1990년 73세 때 마지막으로 그린 까치. 65년간 같은 새가 그의 화면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 미술사에서 한 모티프에 이렇게 평생을 헌신한 사례는 드물다 — 김창열의 물방울, 유영국의 산, 그리고 장욱진의 까치.


"나는 심플하다" — 장욱진의 미학

장욱진이 평생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것 — "나는 심플하다." 이 한 마디가 그의 미학 전부다.

그의 작품은 작다. 대부분 한 뼘 남짓. 가장 큰 것도 그리 크지 않다. 소품(小品)의 테두리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어떤 화가들은 거대한 캔버스로 압도하려 한다. 장욱진은 정반대였다. 작은 화면 안에 더 많이 담는 일, 그것이 그의 길이었다.

그의 표현 방식은 아동화에 가깝다. 원근법도 비례도 무시한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들은 그를 파울 클레(Paul Klee)호안 미로(Joan Miró) 와 비교한다. 그러나 장욱진의 동심은 그들과 다른 자리에 있다. 클레와 미로가 서양 모더니즘이 발견한 동심이라면, 장욱진의 동심은 한국 시골의 풍경에서 자란 토속적 동심이다. 까치가 운다, 큰 나무가 있다, 작은 집에서 가족이 산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는 풍경.


BTS RM과 장욱진

흥미로운 동시대 사실 하나.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김남준) 은 잘 알려진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다. 그는 장욱진의 작품을 깊이 사랑하는 컬렉터로 알려져 있다. 2021년 미국 텍사스의 한 미술관 방문 당시 나무 아래 앉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ucchin vibe(장욱진 느낌)" 라는 태그를 단 일이 화제가 됐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는 RM 소장품 6점이 포함됐다. RM은 "내 소장품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며 어떤 작품이 자신의 것인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K-팝의 가장 큰 글로벌 스타가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의 가장 정직한 후원자가 된 셈이다.


한국에서 만나는 장욱진

  •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 그의 이름을 딴 전용 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2024) 등 주요 전시
  • 삼성미술관 리움, 호암미술관 등 주요 사립 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 소장

마치며 — 작은 그림, 큰 세계

이 시리즈의 9명 작가들이 각자의 미학으로 도달한 자리들이 있다. 워홀의 차가운 표면, 저드의 사물, 호크니의 색, 김환기의 점, 유영국의 산. 장욱진은 그중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에 선다. 그가 그린 것은 한국 시골 마당의 풍경 — 까치, 나무, 작은 집, 가족, 해와 달. 가장 평범한 것들. 그러나 그것을 평생 들여다본 사람의 손에서, 그것은 가장 영원한 것이 되었다.

그가 한 말이 있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그는 평생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자연 가까이 살았다. 자연의 침묵 속에서 그가 들은 대화 — 까치가 우는 소리,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가족이 모이는 소리 — 를 작은 캔버스에 담았다.

이번 시리즈로 우리는 17명의 작가를 만났다. 동·서양, 추상과 구상, 거리와 미술관, 그리고 침묵과 발화의 모든 자리를. 그 마지막 자리에 장욱진이 있다. 가장 작은 그림 안에 가장 큰 평화를 담은 사람. 다음에 그의 까치 한 마리 앞에 설 일이 있다면, 거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는 마당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따뜻한 선물이다.


"나는 심플하다."
— 장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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