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인가, 깃발의 그림인가 — 재스퍼 존스, 침묵하는 미국의 거장

 

깃발인가, 깃발의 그림인가 — 재스퍼 존스, 침묵하는 미국의 거장

들어가며

캔버스 가득 미국 성조기가 걸려 있다. 빨간 줄과 흰 줄, 왼쪽 위 푸른 사각형 위의 별들. 누가 봐도 미국 국기다. 그런데 이상하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캔버스 바닥에는 신문지의 활자들이 비쳐 보인다. 물감은 두툼하게 굳어 있고, 어딘가 거칠다. 색은 환한데 어딘가 차갑다.

이것은 깃발인가, 깃발을 그린 그림인가?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1930~ )**는 이 한 가지 질문으로 20세기 미술사를 흔들었다. 1954년,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던 시절, 24세의 무명 청년이 가장 익숙하고 가장 정치적인 이미지 — 미국 국기 — 를 캔버스 위에 그렸다. 그것이 미술사를 갈랐다. 잭슨 폴록의 분출하는 자아 대신, 존스는 "이미 마음이 알고 있는 것들(things the mind already knows)" 을 그렸다. 그리고 그 익숙한 것들이 어떻게 낯선 것이 되는가를 평생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작품에 대해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인터뷰는 짧고, 답은 모호하다.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가 만난 작가들 — 동양적 사유의 이우환, 노동의 이배, 정직한 사물의 도널드 저드, 박물관에 편지 쓰는 갈라 포라스-김, 색의 호크니, 한 방울의 김창열, 신체의 이건용 — 그 모든 길을 다 합쳐도 닿기 어려운 자리에 존스가 서 있다. 수수께끼를 만들고, 그 수수께끼에 대해 침묵하는 사람. 95세인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살아있는 화가다.


조지아의 소년, 그리고 한 군인의 이름

1930년 5월 15일, 재스퍼 존스는 미국 남부 **조지아주 어거스타(Augusta, Georgia)**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에는 미국사가 새겨져 있다. 윌리엄 재스퍼(William Jasper) 중사 — 미국 독립전쟁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포트 몰트리 전투에서 쓰러진 성조기를 다시 일으켜 세운 전설적인 군인. 존스의 아버지 이름이 윌리엄 재스퍼 존스였고, 그도 그 이름을 물려받았다.

운명이라기엔 너무 직접적이다. 이름에 깃발이 새겨진 채 태어난 소년. 훗날 그가 평생을 깃발을 그리며 보낼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부모의 이혼 후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친척들 손에 자라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잠시 미술을 공부했고, 1949년 뉴욕으로 향한다. 그러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한국전쟁, 그리고 일본 센다이

1952~1953년, 존스는 6.25 전쟁 중 미군으로 복무했다. 직접 전투에 투입되지는 않았고, 일본 센다이(仙台)에 주둔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아시아 체류는 그에게 흔적을 남겼다. 후일 그의 일부 작품에서 일본 미술의 영향이 감지된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한국전쟁의 한가운데서 청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은, 1954년 그의 첫 깃발이 단순한 이미지 차용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제대 후 1953년,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를 평생의 동반자이자 연인, 협력자로 만들 한 사람을 만난다.


라우셴버그와의 운명 — 6년의 동거, 영원한 영향

뉴욕에서 존스가 만난 사람은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였다. 다섯 살 위, 텍사스 출신의 천재. 두 사람은 1953년 만나 1961년까지 6년간 연인이자 작업 파트너로 함께 살았다.

195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는 사회적 금기였고 일부 주에서는 불법이었다. 매카시즘이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동성애자도 함께 사냥하던 시절. 두 청년은 로어 맨해튼 펄 스트리트의 허름한 작업실에서 서로의 작업을 지지하며 치열하게 그렸다. 라우셴버그는 박제동물과 일상 오브제를 결합한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s) 을, 존스는 깃발과 표적과 숫자를 그렸다. 그들에게 추상표현주의는 죽었다. 폴록과 더 쿠닝의 마초적이고 자아 도취적인 캔버스에 두 사람은 조용히 반기를 들었다.

이 시기 그들의 친구로는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와 무용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 또 한 쌍의 동성 커플 — 이 있었다. 케이지의 〈4분 33초〉 같은 침묵의 작업, 커닝햄의 우연성의 안무. 이 네 사람의 미학적 결사가 미국 전위예술의 새로운 축을 만들었다. 존스가 평생 침묵을 자신의 미학으로 삼은 것은 이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1954년, 꿈에서 깃발이 나타나다

존스는 후일 회고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큰 미국 국기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튿날 아침, 그는 캔버스를 준비했다.

1954년부터 1955년까지 그가 작업한 〈Flag(깃발)〉 은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아는 성조기가 아니다. 별이 50개가 아니라 48개다. 1959년에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주로 편입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 시점의 미국이다. 1954년의 미국 — 매카시 청문회가 열리고, 모든 시민이 자신의 애국심을 증명하라는 압박을 받던 그해. 미국 국기가 '의심받는 시민'과 '진정한 애국자'를 가르는 칼날이 되어 있던 그 시기에, 24세의 청년이 그 깃발을 캔버스 위에 평면으로 옮겨놓았다.

존스는 단 한 번도 이 작품의 정치적 의도를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신성모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혁명적 정치 발언이었다. 그는 둘 다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침묵했다.


밀랍의 정직함 — Encaustic 기법

〈Flag〉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모호함만이 아니다. 기법 자체가 혁명이었다.

존스는 처음에 에나멜 페인트로 그렸지만 잘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납화법(Encaustic) 을 떠올렸다 — 고대 이집트 미라 초상에서 사용되던, 녹인 밀랍에 안료를 섞어 그리는 기법. 그는 캔버스 위에 신문지를 콜라주처럼 붙이고, 그 위에 뜨거운 밀랍을 부어 굳혔다. 빠르게 굳는 밀랍은 붓질의 흔적을 그대로 가두었다. 표면은 거칠고 두툼하다. 거기에 굳어 있는 신문 활자는 그날그날의 뉴스 — 한국전쟁 보도, 매카시 청문회 기사 — 였다.

이 기법의 함의는 깊다. 보통 회화는 환영(illusion) 을 만든다. 평면 위에 깊이가 있는 듯, 부피가 있는 듯 그린다. 그런데 존스는 깃발 자체를 캔버스에 올려놓은 듯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깃발의 그림이라기보다, 깃발이라는 사물 자체처럼 보였다. 회화가 환영의 게임을 멈추고 사물(thing) 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충격은 곧 미니멀리즘과 팝아트로 이어진다.


〈백기(White Flag)〉 — 1955년

1955년, 그는 더 도발적인 작업을 한다 — 〈White Flag(백기)〉. 미국 성조기와 똑같은 형태이지만, 모든 색이 사라지고 흰색만이 남았다. 별도, 줄도, 푸른 사각형도 모두 흰 밀랍으로 덮여 있다. 표면의 미세한 결만이 형태를 짐작케 한다.

이것은 깃발인가? 항복의 깃발(white flag)인가? 아니면 색이 지워진 추상화인가? 존스는 답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수평선 위의 은색 원이 태양인지 달인지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흰 깃발 모양의 그림이 미국 깃발인지 단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우리가 깃발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상징으로 보지 않고 그저 형태로 볼 수 있는가? 그는 그렇게 묻고 사라졌다.


〈4개의 얼굴이 있는 표적〉 — 1955

같은 1955년의 또 하나의 결정적 작업. 〈Target with Four Faces(4개의 얼굴이 있는 표적)〉. 캔버스에 동심원 표적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나무 상자가 부착되어 있다. 상자 안에는 얼굴 하반신의 석고 본 4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입과 턱과 목만 있는 익명의 얼굴들. 상자 앞에는 경첩이 달린 나무 덮개가 있어, 관람자가 그것을 내려서 얼굴을 가릴 수 있다.

표적을 보고 있는데, 표적 위에는 얼굴들이 있다. 누가 표적인가? 표적은 누구를 향하는가? 1955년이면 매카시 청문회가 막 끝난 직후다. 청문회는 이름 없는 자들을 표적으로 만들고, 입을 봉쇄했다. 존스는 한 마디도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으면서, 그 시대의 폭력 한가운데에 침묵하는 작품을 놓아두었다.


1958년, 카스텔리의 발견 — 그리고 즉각적 명성

1958년 1월, 갤러리스트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가 라우셴버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는 라우셴버그의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옆방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다른 청년의 작품들 — 깃발, 표적, 숫자, 알파벳. 그 자리에서 카스텔리는 재스퍼 존스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며칠 뒤 그는 〈Flag〉 등 5점을 카스텔리 갤러리에 전시했다.

전시는 폭발적이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의 알프레드 바 관장이 즉석에서 3점을 구입했다. 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했고, 27세의 존스는 단숨에 미국 미술계의 가장 주목받는 신예가 되었다. 그가 거의 무명에서 미국 미술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카스텔리는 평생 존스의 갤러리스트였고, 그를 통해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도널드 저드 등 1960년대 이후 미국 현대미술을 정의한 모든 작가가 세상에 나왔다.


"마음이 이미 아는 것들" — 그의 평생 어휘

존스의 작업을 관통하는 한 마디가 있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것을 "마음이 이미 아는 것들(things the mind already knows)" 이라고 불렀다.

  • 깃발(Flag) — 미국, 정체성, 충성
  • 표적(Target) — 조준, 대상, 게임
  • 숫자(Numbers, 0 through 9) — 가장 중립적인 기호
  • 알파벳(Alphabet) — 언어의 가장 기본 단위
  • 지도(Map) — 미국 본토 48개 주의 지도

왜 이런 것들인가? 존스의 답은 명료하다 —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것들. 의미가 너무 강해서, 사물 자체로는 보이지 않게 된 것들. 폴록이 자기 무의식을 캔버스에 토해냈다면, 존스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적 기호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개인의 표현을 지웠다. 폴록이 "나"의 미술이라면, 존스는 "우리"의 미술이다.

이것이 그를 추상표현주의에서 팝아트로, 미니멀리즘으로, 개념미술로 가는 결정적 가교(bridge) 로 만들었다. 워홀의 캠벨 수프 캔이 가능했던 것은 존스의 깃발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뒤샹과의 만남 — 사유의 동반자

1959년, 존스는 결정적인 인물을 만난다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변기를 〈샘(Fountain)〉이라 명명하며 미술의 정의를 뒤흔든 그 거장.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존스는 뒤샹의 사유에 깊이 빠져들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사물과 작품의 차이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의미는 누가 부여하는가?

이 만남 이후 그의 작업에는 더 많은 언어유희와 철학적 농담이 들어온다. 〈False Start〉(1959) 같은 작품에서는 색의 이름(RED, BLUE, YELLOW)을 캔버스에 적어놓는데, 그 단어가 가리키는 색과 단어가 인쇄된 색이 일부러 어긋난다. 우리는 'RED'라는 글씨를 빨간색 'BLUE' 잉크로 읽으며 혼란스러워한다. 언어와 시각, 기호와 지시,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얼마나 임의적인 약속인지를 그는 보여준다.


Crosshatch — 1973~1983년의 추상

1970년대에 존스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한다. 〈Crosshatch(평행선의 교차)〉 시리즈. 캔버스 가득 짧은 평행선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그어져 있다.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의 평행선들이 격자처럼 교차하며 거대한 추상적 패턴을 만든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Between the Clock and the Bed(시계와 침대 사이)〉(1981, 1982-83 두 버전). 제목은 에드바르 뭉크의 동명 회화에서 따왔다. 뭉크의 후기 자화상으로, 노화가가 시계와 침대 사이 — 죽음과 잠 사이 — 에 서 있는 그림이다. 존스는 그 무거운 주제를 순수한 평행선의 교차로 번역했다. 어떤 형상도, 인물도 없다. 다만 평행선들이 서로 만나고 어긋나며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만이 있다.

이 시리즈는 50주년을 맞은 2026년 1월~4월,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Between the Clock and the Bed〉라는 제목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다시 펼쳐졌다. (이 전시는 한 달 전 4월 3일 종료되었다.) 가고시안과 카스텔리 갤러리의 공동 주최로, 1976년 카스텔리에서 열린 〈Crosshatch〉 시리즈 첫 발표 50주년을 기념한 자리였다.


Catenary — 후기의 명상

1990년대 이후 존스는 더 개인적이고 더 명상적인 작업으로 향한다. 〈Catenary(현수선)〉 시리즈가 그것이다. 두 점 사이에 느슨하게 매달린 줄 — 양 끝을 잡고 늘어뜨린 줄이 자연스럽게 만드는 곡선, 수학적으로는 현수선이라 불리는 그 단순한 형태 — 이 그의 화면 위에 등장한다. 무게와 균형, 시간과 중력, 노년의 사유.

이 시기 그의 작업에는 자전적 요소도 더 많이 들어온다. 어린 시절 살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집의 평면도, 가족 사진, 별자리. 80대에 들어선 화가가 자기 인생을 조용히 거두어들이는 풍경처럼 보인다.


시장이 말하는 존스 — 살아있는 화가의 최고가

존스의 작품은 20세기 후반 미국 미술 시장의 정점에 있다.

  • 1980년 휘트니 미술관이 〈Three Flags〉(1958)를 100만 달러에 구입 — 당시 생존 화가 최고가 기록
  • 1988년 영화 거물 데이비드 게펜이 〈False Start〉(1959)를 1,705만 달러에 구입
  • 2006년 게펜이 같은 작품을 헤지펀드 매니저 케네스 그리핀에게 8,000만 달러에 매각
  • 2010년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븐 A. 코헨이 〈Flag〉(1958)를 약 1억 1,000만 달러에 구입 — 다시 한번 생존 화가 회화 최고가

그러나 정작 존스 본인은 거의 매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인터뷰는 짧고, 사적인 말은 더 짧다. 2012년까지 뉴욕 업스테이트 스토니 포인트의 농장에 살며 작업했고, 지금은 코네티컷주 샤론카리브해 세인트 마틴 섬의 자택(필립 존슨 설계)을 오가며 산다. 그의 컬렉션에는 피카소, 드가, 뒤샹, 사이 톰블리, 라우셴버그 등의 작품이 있다.


〈Mind/Mirror〉 — 2021~2022년, 가장 큰 회고전

2021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존스의 작품 세계를 정리하는 가장 야심찬 회고전이 열렸다. 〈Jasper Johns: Mind/Mirror(재스퍼 존스: 마음/거울)〉.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린, 미술관 두 곳이 한 작가에게 헌정한 미증유의 전시였다.

전시 컨셉이 절묘했다. 존스는 평생 거울과 짝(mirroring and doubles) 의 모티프에 사로잡혀 있었다. 두 미술관은 각자 독립적인 회고전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짝 구조를 가졌다. 한쪽에서 본 작품의 짝이 다른 쪽에 있는 식이었다. 큐레이터 카를로스 바수알도(필라델피아)와 스콧 로스코프(휘트니)의 7년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 91세의 존스는 여전히 작업 중이었고, 신작들도 함께 전시됐다.


다가오는 전시 — 2026년 5월, 빌바오 〈Night Driver〉

그리고 한 달 후. 2026년 5월 29일부터 10월 12일까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Jasper Johns: Night Driver(나이트 드라이버)〉 가 개막한다. 약 140여 점의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로 7개 전시실을 채우는 대형 회고전. 큐레이터는 엔리케 훈코사(Enrique Juncosa).

전시 제목 〈Night Driver〉는 1960년 존스의 한 드로잉 제목에서 따왔다. 그는 이 작품을 "내 첫 번째, 개인적 감정에 뿌리를 둔 작품" 이라 불렀다. 그토록 인상학을 거부하던 화가가 처음으로 자기 감정을 그렸다고 인정한 작품. 빌바오 회고전은 이 한 점에서 출발해 7개 갤러리에 걸쳐 그의 70년 궤적을 펼친다 — 깃발과 표적의 1950년대, 더 개인적이고 우울한 1960년대, Crosshatch의 1970-80년대, Catenary의 1990-2000년대, 그리고 2020년 이후의 신작까지.

이 시리즈를 따라 읽고 계신 분이 5월 말 이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빌바오는 올해 가장 의미 있는 미술 순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마치며 — 침묵하는 거장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는 여덟 명의 작가를 만났다. 이우환의 점, 이배의 검정, 도널드 저드의 상자, 갈라 포라스-김의 편지, 호크니의 빛, 김창열의 물방울, 이건용의 신체. 그리고 재스퍼 존스의 깃발.

존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침묵하는 사람이다. 그가 만든 이미지들은 단순하다. 깃발, 표적, 숫자. 누구나 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손을 거치면 갑자기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익숙함의 한가운데서 낯섦을 발굴하는 일 — 이것이 그의 평생 작업이다. 그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면 같은 깃발이 매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점에서 존스는 어쩌면 이건용과 가깝다. 두 사람 모두 "그림이 무엇인가"를 그리는 행위 자체로 묻는다. 이건용이 신체의 동작으로 묻는다면, 존스는 침묵 —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 — 으로 묻는다. 둘 다 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공통된 미덕이다.

다음에 미술관에서 그의 깃발 앞에 서게 된다면, 잠깐 멈추고 자문해보시길. 이것은 깃발인가, 깃발의 그림인가, 아니면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것인가? 95세의 화가는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답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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