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된 미술 — 도널드 저드의 정직한 상자들

 

사물이 된 미술 — 도널드 저드의 정직한 상자들

들어가며

미술관에 들어선다. 텅 빈 흰 방 한가운데, 또는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린 금속 상자들. 광택 있는 알루미늄, 거친 코르텐 스틸, 투명한 플렉시 글라스. 상자는 그저 상자일 뿐이다. 어떤 메시지도, 인물도, 풍경도, 감정도 그 안에 없다. 상자는 그냥 거기 있다.

이것이 미술인가?

20세기 후반 미술사를 가른 이 도발적 질문 앞에 가장 단호하게 답한 사람이 바로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다. 그는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정작 본인은 그 호칭을 평생 거부했다. 그리고 자기 작품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 '특수한 사물(Specific Objects)'.


화가가 아니라 비평가로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도널드 저드의 출발점은 그림이 아니라 이었다. 1928년 미주리주 엑셀시어 스프링스에서 태어난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1959년부터 약 6년간 그는 『아트 매거진』 등 주요 잡지에 활발하게 비평을 기고하던, 뉴욕에서 가장 날카로운 평론가 중 한 사람이었다.

비평가가 작가의 길을 걷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저드에게 글쓰기와 작업은 한 뿌리였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회화의 평면성은 어디까지 정직할 수 있는가, 조각의 구심성은 왜 답답한가 —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글이 아니라 사물 자체로 내놓기로 한다.

1965년에 발표한 그의 결정적 에세이 「특수한 사물(Specific Objects)」은 미술사를 갈랐다. 회화는 평면이라는 환영(illusion) 안에 갇혀 있고, 전통적 조각은 부분과 부분의 관계라는 구성주의 함정에 빠져 있다. 둘 다 작품을 무엇인가 다른 것을 가리키는 표상으로 만든다. 그는 그 둘 모두에서 빠져나오는 제3의 길을 제안했다 —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3차원 사물.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을 거부한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처럼 거론되지만 그는 평생 그 용어를 싫어했다. 칼 안드레, 댄 플래빈, 로버트 모리스, 솔 르윗 — 함께 묶이는 이 작가들은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미니멀 아트"는 어차피 평론가 바버라 로즈가 1960년대 잡지 기사에 쓰면서 굳어진 외부의 명명일 뿐이었다.

그가 거부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용어가 작가들 각자의 차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개별의 특수성을 추구한 사람이 보편의 단체 호칭에 묶이는 것은 자기 작업의 핵심을 부정당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작업을 "3차원 작업(three-dimensional work)" 또는 "특수한 사물" 이라 불렀다. 미니멀이 아니라 정확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산업적 재료 — 정직함이라는 윤리

저드의 작업을 보면 거의 모든 것이 공장에서 나온 듯하다.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황동, 코르텐 스틸, 합판, 플렉시 글라스. 색은 산업용 에나멜이나 래커. 그는 직접 손으로 깎거나 두드리지 않고, 공장에 도면을 보내 주문 제작했다.

이 선택의 핵심은 한 단어로 요약된다 — 정직함(honesty). 한 재료가 다른 재료인 척하는 것을 그는 견디지 못했다. 합성수지가 돌인 척하는 것, 플라스틱이 나무 무늬를 흉내 내는 것 — 이런 위장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금속은 금속이어야 하고, 합판은 합판이어야 한다. 색을 입혀도 그것이 금속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작가의 손맛이라는 신비도, 재료의 위장도 모두 거짓이다. 사물은 자신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해야 한다.

이 정직함의 윤리는 그의 후기 가구 작업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표 작업들

〈무제〉, '스택(Stack)' 시리즈

저드의 가장 상징적인 작업. 동일한 직육면체 상자를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으로 부착한다. 보통 10개 안팎. 상자와 상자 사이의 빈 벽도 사실은 작품의 일부다. "부분의 합"이 아니라 "단위의 반복". 무엇을 표현하지 않고, 그저 모듈이 리듬감 있게 변주된다.

바닥 작업

벽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놓이는 직육면체 작업들. 관람자는 작품 주위를 걸어 돌아야 한다. 시점에 따라 같은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일이 핵심이 된다.

색의 탐구

후기로 갈수록 그의 작업은 색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6면이 모두 다른 색인 알루미늄 상자, 강렬한 원색이 칠해진 합판 작업 — '미니멀=무채색'이라는 통념을 뒤집는 작품들이다. 2000년 슈프렝겔 미술관에서 열린 〈Judd: Colorist〉 전시는 이 측면을 본격적으로 조명했다.

"영구 설치" — 그의 진짜 야심

저드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영구 설치(permanent installation).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갤러리에서 갤러리로 옮겨 다니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작품의 의미는 그것이 놓인 공간 전체와 함께 완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천장 높이, 벽의 비례, 빛의 각도, 옆에 놓인 다른 사물 — 이 모든 것이 작품의 일부다. 전시가 끝나 작품이 창고로 들어가는 순간, 작품은 본래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그는 직접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101 스프링 스트리트, 뉴욕 (1968년 매입)

1968년 그는 뉴욕 소호의 5층 주철 골조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사들였다. 자신의 작품과 동료 작가들(댄 플래빈, 칼 안드레 등)의 작품이 한 자리에 영원히 놓일 수 있는 공간. 가족이 살면서 동시에 작품이 사는 공간. 미술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공간이었다.

텍사스 마파(Marfa) — 사막의 유토피아

1971년 처음 텍사스 서부의 작은 사막 마을 마파를 찾은 저드는 그곳에서 평생의 비전을 발견한다. 미국 멕시코 국경 가까이, 인구 2천 명도 안 되는 폐허 직전의 마을. 1979년 그는 디아 미술재단(Dia Art Foundation) 의 후원을 받아 옛 군사기지 '러셀 요새(Fort D. A. Russell)'를 매입했다. 약 1.4㎢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였다.

1986년에는 직접 치나티 재단(The Chinati Foundation) 을 설립한다. 이름은 인근 산맥 치나티에서 따왔다. 폐창고를 개조한 건물에 그의 〈무제(밀 알루미늄 상자 100점)〉가 두 개 동에 걸쳐 줄지어 놓인다. 똑같은 크기의 알루미늄 상자 100점이 사막의 빛 아래 놓여, 해의 각도에 따라 매 순간 다르게 빛난다. 칼 안드레, 댄 플래빈, 존 챔벌레인 등 11명의 동료 작가 작품도 영구 설치되었다.

마파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이 거주하는 장소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절대 전해지지 않는 공간 — 직접 가서 사막의 건조한 공기와 빛 속에 있어 보지 않으면 그 작업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들 한다. 미술 순례지로 이름난 곳이 된 이유다.


가구 — "가구는 예술이 아니다"

저드의 또 다른 얼굴은 가구 디자이너다. 다만 그 시작은 미적이라기보다 철저히 실용적이었다.

1970년대 초, 마파에 정착한 그가 살림을 차리려 보니 마을에서 살 수 있는 가구라곤 야외용 금속 가구나 빅토리아풍 모조품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게 없자 그는 그냥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든 것은 단순한 침대 하나와 두 자녀를 위한 책상 두 개.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가구를 디자인했고, 1990년대 작고할 때까지 의자, 책상, 침대, 선반, 테이블 등을 꾸준히 제작했다.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가구는 예술이 아니다." 가구는 사용성과 유용성을 가져야 한다. 의자는 앉기 위한 것이고, 책상은 일하기 위한 것이다. 작품이 환영적인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듯, 가구는 기능으로부터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가구는 그 어떤 예술 작품 못지않게 미학적이다. 군더더기 없는 직선, 완벽한 직각, 이음새 없이 마감된 표면. 그가 평생 작품에서 추구한 정직함의 윤리가 일상의 도구에도 그대로 적용된 결과다.


한국과의 만남, 그리고 한국에서의 저드

저드는 1991년 한국을 방문했다. 이 여행에서 그는 한국 전통 미술과 건축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한국 체류의 결과물로 20점의 목판화 세트를 구상해 제작했다.

흥미로운 관찰이 있다. LACMA(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관장 마이클 고반은 저드의 공간 이론이 한국 전통 예술과 건축의 여백과 통한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을 통해 사물의 존재감이 더 또렷해지는 한국 미학이, 저드의 빈 공간에 대한 사고와 어떤 식으로든 만난다는 것이다. 이우환에서 이배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이 보여준 여백의 사유를 떠올려보면, 이 연결고리는 흥미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최근 한국에서의 저드 전시

저드의 한국 전시 이력은 결코 적지 않다.

2014년 국제갤러리 — 1991년 이후 약 20여 년 만의 한국 개인전. 1970~1990년대 입체작 13점 전시. 작고 20주기를 맞아 열린 의미 있는 전시였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개인전 — 약 10년 만의 한국 개인전으로, 아들이자 저드 재단 예술감독인 플래빈 저드(Flavin Judd) 가 직접 기획했다. 1960년대 초기 회화부터 1990년대 입체작까지 30년에 걸친 작업과 1991년 한국 방문 후 제작한 목판화 세트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Donald Judd: Furniture〉 (2025년 11월 27일 ~ 2026년 4월 26일) — 며칠 전 막 종료된 따끈따끈한 전시다.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도널드 저드 가구 전시. 1970~90년대 가구 38점, 판화·드로잉 등 총 100여 점이 소개됐다. 전시장은 마파의 그의 실제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됐고, 클래스 올덴버그(청계천 〈스프링〉의 작가)를 위해 디자인한 책상 같은 작품도 포함됐다. 4월 26일 막을 내려 아쉽게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도록과 자료들은 온라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마치며 — 단순함이라는 어려운 도전

오늘날 우리는 미니멀리즘 미학 속에서 살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가구, 단정한 선반, 비례가 정확한 인테리어. "심플한 게 예쁘다"는 감각은 이미 우리 일상의 기본값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의 미학적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도널드 저드를 만난다.

그러나 단순함은 쉽지 않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정확히 놓을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드의 상자가 단지 상자일 뿐인데도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 상자가 도달한 정확함의 깊이 때문이다. 군살 없는 비례, 정직한 재료,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침묵 — 이것을 한 평생 일관되게 추구한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기에 그저 상자가 아니다.

이우환이 점과 선과 여백으로 동양적 사유를 길어 올렸다면, 이배가 검은 숯에 노동의 흔적을 새겼다면, 저드는 산업적 사물 그 자체를 미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길은 다르지만 도착점은 묘하게 비슷하다 —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하게 두는 일, 거기서 미술이 다시 시작된다는 믿음.

다음에 흰 벽에 걸린 그의 알루미늄 상자를 마주친다면, 표현된 무엇을 찾으려 애쓰지 마시길. 그저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 그 정확한 사이즈와 광택과 간격을 천천히 받아들이시길. 그 침묵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가만히 있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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