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잿더미 위에서 그리는 회화

 

안젤름 키퍼: 잿더미 위에서 그리는 회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무게가 느껴진다. 캔버스의 폭이 5미터를 넘고, 표면에는 물감뿐 아니라 마른 짚, 납판, 부서진 식물의 뿌리, 재가 두텁게 얹혀 있다. 어떤 그림 위에는 책 한 권이 통째로 박혀 있고, 어떤 그림에는 깨진 도자기가 들러붙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표면은 이미 회화의 표면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오랜 시간이 흘러 무너지기 시작한 어느 풍경의 단면, 혹은 폐허의 한 모서리를 잘라 벽에 옮겨 놓은 듯한 자리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회화는 보는 그림이 아니라 견디는 그림에 가깝다. 견디는 동안 우리는 그가 다루는 무거운 주제인 '독일이라는 나라가 자기 역사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는 질문'의 한가운데로 천천히 끌려 들어간다.

안젤름 키퍼(1945년 독일 도나우에싱겐 출생)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두 달 전에 태어났다. 그가 자란 풍경은 폐허였다.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 잿더미가 된 마을, 침묵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과 로망스어를 공부하다 미술로 방향을 돌려, 카를스루에와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에서 페터 드레허, 요제프 보이스 같은 작가들에게 사사했다. 1969년 한 사진 연작에서 그는 유럽 곳곳의 역사적 장소에서 나치식 경례 자세를 취한 자신을 촬영했다. 도발이라기보다는,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과거를 자기 몸으로 한 번 더 통과해 보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의 작업은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다른 곳을 향한 적이 없다. 독일이 외면해 온 자신의 역사, 그리고 폐허 위에서 회화는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다락의 풍경 — 초기 〈독일의 정신적 영웅들〉

1970년대 초, 키퍼는 자기 작업실(시골 학교의 옛 다락방) 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친 나무 들보가 얹힌 좁고 긴 공간, 천장이 기울어진 자리에 횃불 같은 불꽃이 줄지어 있다. 그림 안에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과 사상가, 군인의 이름이 손으로 적혀 있다. 〈독일의 정신적 영웅들에게(Dem unbekannten Maler)〉 같은 제목 아래 그가 부른 것은 한때 독일이 자랑스러워했던, 그러나 나치의 손에 더럽혀진 이름들이었다. 그는 그 이름을 미화하지도, 함부로 지우지도 않았다. 다만 다락이라는 가장 좁고 어두운 자리에 모아 놓고 가만히 응시했다. 잊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떳떳하게 부를 수도 없는 이름들 — 전후 독일의 한 세대가 짊어졌던 그 이중의 짐이, 텅 빈 다락 풍경 안에 응축되어 있다.


납으로 만든 책 — 〈책의 무게〉 연작

1980년대 후반부터 키퍼는 거대한 납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책 한 권의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고, 표지 위에는 마른 식물, 머리카락, 사진의 파편이 박혀 있다. 어떤 책 안에는 별의 좌표가 적혀 있고, 어떤 책 안에는 카발라 신비주의의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어떤 책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납은 연금술에서 가장 무거운 금속, 다른 모든 금속으로 변환되기 전의 원초적 재료로 여겨졌다. 그에게 책은 지식을 옮기는 가벼운 도구가 아니다. 책은 한 시대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사물이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두 사람이 필요한 책 앞에서, 우리는 읽는다는 행위가 본래 가벼운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들판과 잿더미 — 〈마르가레테〉와 〈술라미트〉

1980년대 초, 키퍼는 독일 시인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Todesfuge)〉를 회화의 주제로 삼는다. 시 안에는 두 여성이 등장한다. 금발의 마르가레테는 독일 여성, 잿빛 머리의 술라미트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어 간 유대 여성이다. 키퍼의 캔버스에서 마르가레테는 마른 짚으로, 술라미트는 검게 탄 잿더미와 그을음으로 표현된다. 두 여성은 같은 화폭 위에서 서로를 마주하지 못한 채 평행하게 놓여 있다. 짚이 캔버스에서 떨어지고, 그을음이 손에 묻어나는 그 거친 표면 앞에 서면, 시가 글로 쓰여 있을 때보다 훨씬 가까운 자리에서 그 무게가 다가온다. 키퍼는 회화가 시를 설명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만 시가 다 말하지 못한 자리를 회화의 물질로 메운다.


글을 마치며

키퍼의 작업실은 프랑스 남부의 옛 비단 공장 부지에 있다. 격납고만 한 작업장 안에 거대한 캔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옆에는 짚더미와 납판, 부서진 도자기, 마른 식물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는 캔버스를 마당에 끌어내 비를 맞히고, 불을 붙여 그을리고, 다시 닫아 그 위에 물감을 얹는다. 그의 그림이 무거운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회화의 표면 위에 시간 그 자체를 얹어 놓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풍경, 그 풍경 위로 천천히 자라나는 식물, 그리고 그 식물을 다시 덮는 재. 그가 다루는 모든 재료는 결국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역사는 깨끗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끝났다고 믿었던 자리에서 늘 다시 무엇인가가 자라난다는 사실. 그의 캔버스 앞에 오래 서 있다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 또한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잠깐 스친다. 그 예감이 그의 회화를 무겁고도 동시에 진지하게 만든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단 하나의 수직선 — 바넷 뉴먼(Barnett Newman), 캔버스에 숭고를 그은 사람

문경원 & 전준호: 미지에서 온 질문들

황소와 은박지 — 이중섭, 가장 가난한 한국 화가가 사랑한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