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깊이를 재는 일이 가능한가

 

아니쉬 카푸어: 깊이를 재는 일이 가능한가

전시장 한쪽 벽에 둥근 검은 점이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평면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순간, 그것이 평면이 아니라 벽 안쪽으로 깊게 파인 구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선은 그 안쪽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빛이 그 안에서 모두 흡수되어,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손을 뻗어도 안전할지 망설여진다.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공허(Void)〉 연작 앞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눈으로 본다는 것이 사실은 매우 약한 약속이며, 그 약속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몸은 어쩔 줄을 모른다. 평면처럼 보이는 검은 점 하나가 한 사람의 균형 감각을 흔들어 놓는 것, 그것이 그가 30년 넘게 다듬어 온 가장 단순한 작업의 형식이다.

아니쉬 카푸어(1954년 인도 뭄바이 출생)는 인도인 아버지와 이라크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키부츠 생활을 위해 이스라엘로 떠났다가 미술로 진로를 정하고 1973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런던의 혼지 미술학교와 첼시 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뒤 1991년 터너 상을 받았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의 어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입체를 깎거나 쌓는 일보다, 입체 안에 깊이를 만들거나, 입체를 비물질처럼 보이게 하는 일에 집중한다. 조각이라는 매체가 본래 무게와 부피의 예술이라면, 그는 그 무게와 부피를 어떻게 사라지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에 평생을 매달려 왔다.


색이 곧 사물이다 — 초기 안료 조각

1980년대 초, 카푸어는 바닥 위에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 — 원뿔, 반구, 피라미드 — 를 놓고 그 표면을 강렬한 단색 안료로 덮은 작업을 발표했다. 빨강, 파랑, 노랑, 보라. 작품의 표면이 아니라 그 주변 바닥에까지 안료가 무더기로 쌓여 있어, 작품과 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안료는 인도의 종교의식에서 사용되는 가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어떤 종교적 상징으로 묶어 두지 않는다. 그에게 안료는 한 가지 기능을 한다. 단색이 너무 강렬해질 때, 그 색은 사물의 표면을 지우고 색 자체가 사물이 된다. 우리는 빨간 원뿔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빨강이라는 사물 자체를 본다. 형태는 그 색을 담는 일시적인 그릇에 불과하다. 그의 후기 작업이 다루는 사라짐과 깊이의 주제는 이미 이 초기 안료 조각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도시의 거울 — 〈클라우드 게이트〉

2004년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거대한 강낭콩 모양의 조각이 들어섰다. 길이 20미터,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조형물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다. 표면은 거울처럼 매끈하게 연마되어, 시카고의 마천루와 하늘이 그 표면 위에서 휘어진 채로 비친다. 작품의 별명은 시민들이 붙인 〈더 빈(The Bean)〉. 사람들은 그 아래로 걸어 들어가 자기 모습을 올려다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울 속에서 한 풍경이 된다. 카푸어는 이 작업이 시카고라는 도시 전체를 한 점에 모은 거울이 되기를 바랐다. 하나의 조각이 한 도시의 풍경 전체를 빨아들이는 자리, 그 자리에서 시민들은 자기 도시를 처음 보는 듯한 눈으로 다시 올려다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촬영된 공공 미술 중 하나가 된 이 작업은, 그가 비물질의 감각으로 다루던 깊이의 주제를 도시의 한복판으로 옮겨 놓은 결과다.


빛을 모두 삼키는 검정 — 〈밴타블랙〉 논쟁

2014년 영국의 한 기술 회사 서리 나노시스템스(Surrey NanoSystems)가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신소재 밴타블랙(Vantablack)을 개발했다. 카푸어는 이 소재를 미술 분야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따냈다. 밴타블랙으로 칠해진 표면은 어떤 굴곡도 보이지 않는다. 입체가 갑자기 평면으로, 평면이 갑자기 검은 구멍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독점은 곧 미술계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한 색이 한 작가에게만 속할 수 있는가? 영국의 작가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은 항의의 표시로 가장 분홍빛인 분홍 안료를 만들어 "카푸어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만 판매하기 시작했다. 카푸어는 그 분홍 안료를 어떻게 손에 넣은 뒤 자기 가운뎃손가락에 묻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작가의 비물질에 대한 탐구가 어디서부터 한 색에 대한 사적인 소유로 미끄러지는가 하는 질문을 미술계 전체에 남겼다. 그의 작업이 던지는 깊이의 매혹과, 그 매혹을 둘러싼 윤리적 자리가 함께 떠올랐던 한 시기의 풍경이다.


글을 마치며

카푸어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작업은 한 가지 동작 위에 서 있다. 단단해 보이는 무엇을 비물질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 강철로 만든 거울이 도시 전체를 빨아들이고, 벽에 파인 구덩이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점이 되며, 단색 안료가 형태를 지우고 색 자체를 사물로 세운다. 그가 다루는 것은 결국 사물의 표면 너머에 있는 어떤 자리, 우리가 눈으로는 닿을 수 없으나 몸으로는 분명히 감지하는 그 자리다. 그의 검은 구멍 앞에 서 본 사람은 잠시 자기 발밑이 흔들리는 감각을 받는다. 그 흔들림은 그가 만든 환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의지하고 있는 시각이라는 약속이 사실은 얼마나 약한가를 가르치는 짧은 사건이다. 그의 조각이 우리에게 일러 주는 것은 바로 그 사건이다. 깊이를 재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가,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을 정말로 본 적이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일, 그것이 그의 조각이 마련한 가장 단정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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