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천으로 짓는 집

 

서도호: 천으로 집을 짓는 사람


2026년 하반기, 한국 미술계의 한 장면

올해 하반기 한국 미술계에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다. 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리움미술관에서 연이어 열린다. 8월 국현에서 개막해, 9월 리움으로 이어지는 '서도호 2연전'은 국내에서 열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서도호 전시다.

서도호(徐道濩, 1962~ ).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백남준·이우환의 계보를 잇는 국제적 스타 아티스트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다. 그런데 정작 그의 작업은 대단히 조용하다. 반투명한 천으로 집을 짓는다. 이게 대체로 전부다.

왜 하필 천으로 집을 짓는 걸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하는 서도호 입문 안내서다.


1. '집'이 전부다

서도호 작업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집(home)'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집을 실측하고, 도면을 그리고, 반투명한 천으로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한다. 1962년 서울 성북동 한옥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유학길에 오른 이후 로드아일랜드, 뉴욕, 베를린, 런던을 거치며 수많은 집을 거쳤다. 그 모든 집이 그의 작품의 재료가 된다.

사람들은 그를 "집을 짓는 미술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만 그가 만드는 집은 'house'가 아니라 'home'이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의 기억·감각·관계가 축적된 덩어리. 그는 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려 한다.

한편, house는 건물로서의 '집' — 벽, 지붕, 방, 바닥. 물리적 구조물을 의미하며, home은 누군가가 '사는 곳'으로서의 집 — 그 공간에 쌓인 기억·정서·관계·소속감의 의미를 포함한다. 


2. 왜 천일까 — 은조사라는 선택

서도호 하면 떠 오르는 재료는 은조사(銀條紗)다. 여름용 한복에 쓰이는, 속이 비치는 얇은 실크. 이 재료 선택 하나가 그의 예술 전체를 설명한다.

은조사로 지은 집은 빛을 투과시킨다. 벽은 안과 밖의 경계이지만, 동시에 경계가 사라진다. 보는 사람은 벽 너머를 본다. 집이 가진 육중한 무게는 제거되고, 집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잔상'만 남는다.

한 평론은 그의 집을 '달팽이의 껍질'에 비유하기도 했다. 달팽이는 평생 자기 집을 지고 다닌다. 낯선 세계를 만나면 그 안으로 쏙 숨는다. 서울 사람으로 태어나 뉴욕과 런던을 떠도는 작가에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집은 생존 도구이자 정체성의 피난처였다.


3. 서도호를 알려면 알아야 할 작품들

〈서울집 Seoul Home〉(1999) 모든 것의 출발점. 성북동 한옥 전체를 은조사로 1:1 재현한 초기 대표작. 이후 그의 모든 '집' 시리즈의 원형이 된다.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20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을 기념해 제작된 대표작. 미국 유학 시절 살던 로드아일랜드의 3층 서양식 빌라 안에 성북동 한옥이 통째로 들어가 있다. 은조사로 제작된 집 속의 집 속의 집. 제목의 다섯 번 반복은 끝이 아니다 — '서울관을 품은 서울'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정체성이 양파처럼 겹겹이 쌓이는 방식을 공간화한 작품이다.

〈낙하산병-Ⅰ (Paratrooper-Ⅰ)〉(2003) 적진에 떨어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낙하산병. 서도호가 미국으로 이주한 자신을 빗댄 작품이다. 낙하산병이 움켜쥔 실을 따라가면, 3천 명의 지인과 전시 방명록에서 뽑아낸 이름들이 서로 다른 필체로 수놓아져 있다. 개인과 공동체, 이주민이 어떻게 타인의 네트워크에 기대어 살아남는지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Bridging Home, Liverpool〉(2010~) 영국 리버풀의 두 건물 사이에 한옥 한 채를 아슬아슬하게 걸쳐놓았다. 실제 크기의 진짜 집처럼 보이지만 설치 작품이다. 두 도시, 두 문화 사이에 위태롭게 매달린 이주자의 존재 조건을 응축한 이미지다.

〈다리 프로젝트 (Bridge Project)〉(진행 중) 서도호 최근 작업의 중심축. "당신에게 완벽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는 자신이 '집'이라 느끼는 두 도시 서울과 뉴욕 사이, 태평양 한가운데를 '완벽한 집의 자리'로 상상한다. 그리고 실제로 서울과 뉴욕을 잇는 다리를 설계한다. 물리적으로 지어질 리 없는 이 다리의 드로잉·모형·영상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4. 이 모든 게 왜 '자화상'이 되는가

서도호는 "집으로 자화상을 그리는 작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의 모든 집은 그가 실제로 살았던 집이다. 치수를 재고 도면을 그리는 그의 작업은 집을 기억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개인사적 자화상이 결코 사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주하며 살고 있는가. 고향을 떠나 일을 하고, 국경을 넘어 정착하고, 여러 도시에 동시에 속한다. 서도호의 작업은 한 예술가의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해, 현대인 전체의 '이동하는 삶'이라는 보편적 조건으로 확장된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를 지낸 한국화 거장 서세옥이다. 전통 한국화의 구심이었던 아버지의 그늘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서구 현대미술의 언어로 자기 예술을 세운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이주 서사이기도 하다.


5. 2026년 두 개의 전시에서 기대할 것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6.8 ~ 2027.2) 사상 최대 규모의 회고전. 초기작부터 현재 진행 중인 최신 프로젝트까지 총망라한다. 특히 '브릿지 프로젝트'를 축으로 대표 설치작들이 서울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작가의 사유 과정을 보여주는 다량의 드로잉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리움미술관 (2026.9.5 ~ 12.27) 서도호의 작업을 이주·거주·공동체라는 주제 위에서 조망하는 종합전. 역시 브릿지 프로젝트가 축이 된다. 2012년 리움 개인전(리움 개관 이후 최초의 생존 작가 개인전) 이후 14년 만의 리움 컴백이다.

두 전시는 서로 다른 각도로 한 작가를 비추는 구도다. 2026년 하반기 서울 미술관 순례의 중심축이 될 것이 분명하다.


6. 집이란 무엇인가

서도호의 작업은 결국 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집이란 무엇인가.

벽돌로 지은 구조물인가, 기억이 쌓인 공간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인가, 떠나와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인가. 그의 반투명한 천 집은 이 모든 가능성을 포개놓는다. 쥘 수는 없되 사라지지도 않고, 비어 있되 가득 차 있다.

이주와 유목이 일상이 된 시대, 서도호가 조용히 던지는 이 질문은 오래 남는다. 2026년 하반기, 그의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볼 일이다.




전시 정보

  • 서도호 개인전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2026.8 – 2027.2
  • 서도호 개인전 @ 리움미술관 | 2026.9.5 –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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